▲ 김익록

1980년대 중반, 광주 조선대학교에서는 월요일 아침마다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 대학의 교수와 교직원들이 모두 모여 학교 운동장을 두 바퀴 돌면서 당시 이 대학 총장이자 이사장인 박철웅에 대해 충성 서약을 해야 했다. 코미디 같은 이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하다가 문득 최고의 지성인인 그 교수들이 느낄 자괴감을 생각하며 씁쓸해졌던 기억이 있다. 결국 이 대학에서는 1988년 학생들과 교수들의 저항으로 박철웅이 물러났다. 그 뒤 21년간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되다가, 2009년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구 재단의 사람들이 이사진에 진입하는 문제로 다시 학내 분규가 시작되었다.

듣기에도 민망한 이야기가 또 있다. 세종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조각가 김동우 교수는 1999년 학교 교정에 세울 모자상(母子像)을 제작하였으나 당시 이 대학 이사장이었던 주명건이 "이 작품은 여인의 신체 비례가 5등신밖에 안되고 머리가 너무 크니 8등신의 늘씬한 여인으로 고치라."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작가로서의 소신과 자존심 때문에 주 이사장의 요구에 따르지 않았고 결국 2년 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하여 해임됐다. 그 뒤 이런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며 오랫동안 외롭게 일인시위를 벌였던 김 교수는 전횡을 일삼던 재단이 학생들과 교수들의 저항으로 물러난 뒤인 2005년에서야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원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6년 10월, 부실공사로 비가 새는 등 열악한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강사 채용 비리 의혹을 규명하라며 연일 학생시위가 이어지던 상지대학교 본관 앞에 돌연 "가자, 북의 낙원으로" 등등의 내용이 담긴 불온 유인물이 뿌려졌고, 학생들은 용공으로 몰렸다. 그러나 이 유인물은 학생들이 아니라 학교 측에 의해서 뿌려진 것이라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위기에 몰린 재단 측이 공권력을 동원하여 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 이후에도 재단 비리에 대한 각종 의혹으로 바람 잘 날 없던 상지대학교는 결국 1993년 김문기 이사장이 구속되고 나서 임시 이사 체제가 들어섰다.

사학의 고질적인 비리를 바로잡고 분규를 해결하라고 만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지난 8월 9일, 구 재단의 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에 반발하는 교수와 학생들의 저항 속에 상지대학교는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일부에서는 당연히 구 재단에게 학교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논쟁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 명쾌하다.

구 재단이 물러난 후 지난 17년 동안 상지대학교가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실했던 건물들이 개·보수되거나 신축되고 교수들은 자발적으로 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하였으며, 대학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학교식당에서 친환경 농산물로 밥을 만들어 팔고 사회적 기업 교육이 열리는 등등 상지대학교는 대학이 지향해야 할 가치를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구성원들의 자부심도 함께 커졌다. 과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의 대학에서 견학을 오고 있다.

그러나 구 재단이 사라진 지난 17년 동안 일궈낸 이런 성과들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지역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들과 유력자들이 눈치 보지 말고 나서야 할 때이다. 17년 전 학교를 혼란에 빠지게 했던 구재단 복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학교 구성원들 스스로 힘을 모아 이룬 민주주의의 쾌거를 지켜내는 일은 지역사회 안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인 것이다.

대성중 교사  김익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