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원주투데이포털 | 6.4지방선거 맛집캘린더
 
  최종편집 : 2015.6.1 월
   
> 뉴스 > 기획특집 > 원주마을 탐구
     
원주마을탐구 2부: (18)신림면 금창리
자연마을을 찾아서-군사적 요충지, 전쟁의 흔적 곳곳에 남아
2010년 08월 09일 (월)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
   
 
  ▲ 예찬마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경사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치악산휴양림과 연결되는 '임도'가 나온다. 걷기에 좋은 아름다운 길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계곡 "하지만 갈수록 오염"
절충장군 묘 있었던 곳…관리부실로 상돌만 남아

치악산을 사이에 두고 판부면 금대리와 신림면 금창리는 서로 붙어있다. 관설동을 벗어나 5번 국도를 따라 신림방면으로 가다보면 높은 고개(치악재)를 만나게 되는데 고개를 오르기 전이 금대리이고 고개를 넘으면 금창리다. 치악재 정상에 오르면 왼쪽으로 휴게소가 있는데 일제시대 당시에는 이 마을을 '가리파'라고 했고 이 때문에 치악재도 '가리파 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정상에서 고개를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흑천(黑川)'이라는 표지판이 보이고, 고개를 거의 다 내려가면 오른쪽에 '금창리'라고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입구 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차를 서로 비켜가기 힘들 정도로 좁은 도로와 맞닥뜨리기 때문에 당황스럽다. 정신을 가다듬고 철길 밑을 조심스럽게 지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서 길을 사이로 10여가구가 살고 있는데 이곳이 '둔창'이라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둔전(관청의 운영경비를 조달하기 위한 토지)에서 생산한 쌀을 저장하던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해서 둔창이라고 했다는 설과 쌀이 아니라 검(무기)을 보관하던 창고인 검창(劍倉)이 금창으로 바뀌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둔창마을에서 왼쪽으로는 강씨와 안씨가 피난을 와서 살았다는 '강안'이라는 마을이 있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예찬마을이다. 금창리는 원래 원주군 구을파면 지역으로 일리라고 하다가 지난 1914년부터 5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둔창, 예찬, 강안, 흑천, 금옥동 등 다섯 마을을 합쳐 금창리라고 부른다. 이 중 둔창이 도로 가까이에 붙어있어 중심역할을 했다고 한다.

   
 
  ▲ 예찬마을 평귀옥 절충장군 묏자리가 있는 장소를 이인실 옹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은 훼손되고 비석은 없어졌다.▲ 절충장군 묘 앞에 비석과 함께 놓여져 있었던 상돌이 마을주민 집 뜰에 보관돼 있다.  
 

금창리는 임진왜란 때부터 일제시대와 6.25전쟁 등 크고 작은 전쟁이 있을 때마다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는 바람에 전쟁으로 인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예찬마을에는 '절충장군' 묏자리가 있는데 워낙 오래된 데다 대도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기 위해 길을 내면서 훼손돼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다.

관리가 안되다보니 봉분은 사라지고 비석은 지난 2005년 '건등산뿌리의 후삼국지'를 쓴 이용옥 씨가 가져갔다가 분실했다고 한다. 현재는 상돌만 묏자리 바로 아랫집인 송기철 씨 집 뜰에 보관돼 있다. 문헌에 의하면 평원 평 씨(平原 平氏) 평귀욱 절충장군의 묘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인물로 보이며, 절충장군이라 직급은 곽재우 의병장이나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직급이라고 전한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는 이인실(74) 옹은 "절충장군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묏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다"며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장군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 후손이 할 수 있는 당연한 도리인 만큼 시에서 관심을 갖고 복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둔창마을 입구 첫 번째 집에 살고 있는 김태수(65) 옹도 평생을 농사를 지으며 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3대를 거쳐 이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한다. 김 옹에 따르면 6.25전쟁 때 인민군이 이 마을 근처에 있는 중앙선 터널을 병기창고로 사용하는 등 국군이나 인민군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60∼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하다 보니 인민군 지갑과 사람 뼈 조각, 포탄이 많이 나왔어요. 어릴 적에 포탄을 주워 엿으로 바꿔 먹곤 했지요" 또 "마을 주변 산에는 진지로 사용했던 벙커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김 옹의 말이다. 김 옹의 부친도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마을사람 10여명과 함께 끌려가다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이렇듯 금창리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오래 전엔 200가구 정도가 살 만큼 마을이 번성했었지만 먹고 살기가 힘들다보니 하나둘씩 마을을 떠나면서 지금은 한 마을에 30여 가구 정도가 남아 있다. 이들 중에도 최근 10여년 이내에 이사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김 옹은 옛날이 그립다고 한다. "불과 8, 9년 전만해도 밀을 수확하면 국수를 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눠먹는 등 마을에 대소사가 생기면 너나 할 것 없이 마을사람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마을공동체 문화는 사라졌어요"

   
 
  ▲ 마을이 시작되는 둔창에서 예찬마을까지 4㎞가량 이어진 금창계곡. 신선들이 놀았을 법한 맑은 계곡이 휴가객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금창리의 가장 큰 자랑은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생명줄과 같은 금창계곡이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 계곡을 이루고, 우거진 나무들이 계곡을 감싸고 있어 삼복더위에도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물줄기 두 개가 만나는 곳을 심밭골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심밭골 농원'이 있다. 이장을 지냈던 백성용(60) 씨가 노모를 모시고 자녀들과 표고버섯, 취나물 등을 재배하면서 휴게소를 운영한다. 옛날에 그곳에서 산삼을 캤다고 해서 '심봤골'이나 '심밭골' 두 가지로 부르다가 지금은 심밭골이라고 한다.

그 계곡을 따라 둔창과 예찬이 이어지는데 계곡을 끝까지 따라 올라가면 금대리와 경계가 되는 산 봉우리를 만난다. 중간 중간 포장과 비포장으로 연결된 좁은 길을 따라 오르면 마을을 한 바퀴 돌 수 있고, 치악산 휴양림으로 이어진 임도를 만날 수 있다. 양쪽에 우거진 나무 숲 샛길을 걸으면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산 정상에는 옛날에 벼락을 많이 맞았다고 하는 벼락바위가 있다. 등산로를 따라 500~600m가량 올라가면 되는데, 운동화를 꼭 착용해야 안전 하다는 것이 이인실 옹의 충고다.

벼락바위가 있는 벼락바위봉은 치악산 남대봉에서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 경계를 이루며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이 치악재로 내려섰다가 찰방망이를 지나 다시 솟아 오른 정점이다. 중앙선 또아리굴과 중앙고속도로 옆 치악산자연휴양림 뒷산이기도 하다.

이곳에 오르면 원주와 멀리 제천, 주천 방면까지 내려다 볼 수 있어 등산객들이 즐겨 오르는 코스이기도 하다. 찰방망이 고개는 옛날에 다니던 구길 이었다고 하는데, 역골이라는 곳에 신림역이 있을 때 역을 관장하던 보안도 찰방이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해 찰방망이라고 부른다는 설과, 원주 원(元) 씨가 이곳에 묘를 쓰고 찰방이 났다 해 찰방망이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다.(찰방은 관직)

이 길을 단종대왕이 유배지 영월로 가기위해 지났다고 하는 유래에 의하면 단종대왕은 부론면 단강리에서 귀래면 용암2리, 흥업면 매지리를 지나 이곳 금창리 찰방망이 고갯길을 넘어 황둔의 솔치재와 주천을 지나 영월에 도착했다고 전한다.

   
 
  ▲ 치악재 정상에 있는 가리파 성황당. 옛날 보부상들이 치악재를 넘을 때 호랑이로 부터 지켜달라며 제를 지냈던 장소. 현재 치악휴게소 맞은편에 복원돼 있다.  

금창리엔 유난히 당숲이 많다. 가리파고개 정상, 지금 치악재 정상 치악산휴게소 맞은편에는 가리파 성황당이 있다. 새마을 운동을 하면서 없어졌었는데 최근 복원을 시켜놓았다. 이 성황당은 옛날 보부상들이 조금씩 돈을 거둬 지었다고 한다. 등에 짐을 짊어지고 장사를 하기위해 고개를 넘어 다니던 보부상들이 호랑이를 만나 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 성황당에서 산신령제를 지냈다고 한다. 보부상들은 가리파에 있는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고도 한다. 둔창 마을에도 둔창 성황당이 있다. 예전에는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일년에 두 번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 성황당에 모여 마을의 안녕을 비는 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요즘은 몇몇 사람만이 풍속을 이어가고 있다.

둔창 마을회관 근처에는 지금은 밭으로 쓰고 있는 옛날 쌀(병기)창고 '둔창'이 있었던 터가 남아있다. 둔창터 맞은편에는 관혼상제 때 사용하는 물건들을 수작업으로 만들던 '함터'가 있는데 이곳에선 혼인을 하기위해 신랑친구들이 예물을 넣어 등에 짊어지고 신부 집에 찾아가서 '함 사세요!'를 외치던 그 함과 혼인예복, 폐백물품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둔창, 예찬, 강안, 흑천, 금옥동 등
다섯 마을이 합쳐져 금창리…한 때는 200여 가구가
살 만큼 번성했는데 먹고 살기 힘들어
하나 둘 마을을 떠나고, 최근에는
계곡이 좋아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5번국도 건너편 마을인 흑천에서 가리파로 넘어가는 긴 골짜기를 '껑뚱막'이라고 했다고 한다. 옛날에 이곳에 움막을 짓고 한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가장이 매일 술을 먹고 다녀 도저히 살 수가 없게 되자 부인이 남편이 나간 사이에 불을 질렀고, 주정뱅이 남편은 불에 놀라 껑뚱거리며 도망갔다고 해서 껑뚱막이라 하는데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소리가 들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인지 전해 내려오는 전설도 많은 금창리. 화전민이었던 금창리 사람들도 변화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전에는 산에 가면 자연산 송이나 표고버섯이 많아 이를 채취해 팔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공해 때문인지 산나물조차 예전처럼 풍족하지 않다. 토종벌을 키우는 주민들도 있는데 올해는 왠지 벌이 자꾸 죽어서 꿀도 얼마 생산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농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많고, 축사나 양계를 하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신선들이 놀았을법한 금창계곡은 세상에 알려지면서 도시민들의 별장지로 개발되고, 휴가철만 되면 몸살을 앓는다. 도로 폭이 차가 비켜설 수 없을 정도로 좁은데, 그 길에 주차를 하고 계곡에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급한 볼일이 생겨도 차를 끌고 나갈 수가 없다. 거기다가 아무데나 오물과 쓰레기들을 버려 풀숲마다 쓰레기 천지다. 교직에서 퇴임 하고 이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는 최희응(65·신림면 금창리) 전 교장의 아내 박희분 씨는 "금창계곡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휴가객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고사 하더라도 자연훼손이 너무 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금창리 역사는 원주시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절충장군 묏자리도 잘 복원해 선조들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 이 마을 주민들의 바람이다. 한 번 훼손된 자연을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 이상 금창계곡이 망가지기 전에 지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계곡을 찾는 휴가객들의 의식이 바로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임춘희 기자 hee@wonjutoday.co.kr

     관련기사
· 원주마을탐구 2부: (28)호저면 용곡리
임춘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원주투데이(http://news1042.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예찬마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경사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 바로 아래 치악산휴양림과 연결되는 '임도'가 나온다. 걷기에 좋은 아름다운 길이다.

이인실

김태수

백성용

예찬마을 평귀옥 절충장군 묏자리가 있는 장소를 이인실 옹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관리가 되지 않아 봉분은 훼손되고 비석은 없어졌다.

절충장군 묘 앞에 비석과 함께 놓여져 있었던 상돌이 마을주민 집 뜰에 보관돼 있다.

마을이 시작되는 둔창에서 예찬마을까지 4㎞가량 이어진 금창계곡. 신선들이 놀았을 법한 맑은 계곡이 휴가객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치악재 정상에 있는 가리파 성황당. 옛날 보부상들이 치악재를 넘을 때 호랑이로 부터 지켜달라며 제를 지냈던 장소. 현재 치악휴게소 맞은편에 복원돼 있다.
기획특집: 시민의 발 시내버스, 인구
사건사고 브리핑
귀래 사랑의집 48년 악연 끊었다
4월 원주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제16회 장미축제…축하공연·체험행사
행구동 아파트 거래현황…현대아파트 3
제11회 청소년축제 성황
원주천에서 수달 서식 목격
(주)인성메디칼 원주 이전 지역주민
원주문화재단,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대표이사 오원집  |  Tel : 033)744-7114 / Fax : 033)747-9914
발행인: 심형규  |  편집인: 오원집  |  등록년월일: 2012년 4월 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Copyright 2009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jtoday1@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