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장마전선에 대한 일기예보를 엿들었는가, 흙 속에 숨어있던 풀씨들이 깨알처럼 싹을 틔운다. 삭막하던 겨울 대지를 기적처럼 푸르게 물들이던 잡초들의 출진은 설렘의 팡파르처럼 반가웠는데, 장마철을 맞아 온 천지를 정복해 버릴 무서운 기세를 생각하면 풀은 서둘러 제압해야할 대상일 뿐이다.

우리 집 마당은 잔디밭이라지만 질경이와 크로바가 대세이다. 음지쪽 질경이 뿌리는 여러 갈래로 깊어 이름 값을 톡톡히 한다. 양지쪽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크로바 줄기와 잔디를 발려내는 일은 새치를 솎아내는 일처럼 집중력을 요구하는 품이다. 고추밭 역시 바랭이와 명아주, 쇠비름 싹이 벼의 모판처럼 빽빽하게 치밀고 돋아난다.

잡초를 뽑으며 무구한 노역의 핑계인지 불현듯 벨기에의 동화('마리 드 라 라메', 1871) '프란다스의 개'를 생각한다. '네로'는 늙은 유기견을 간호하고 '파트라슈'는 우유배달 수레를 끌며 보답한다. '네로'의 고달픈 삶 주변에는 예쁘고 마음씨 고운 부자집 외동딸 '아로아'가 있었다. '네로'의 그림솜씨를 지지하는 '아로아'와 늙은 개 '파트라슈'는 초라한 소년의 생활을 따뜻하게 보듬는 동반 관계이다.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여전히 고난과 소외의 늪에서 허덕이는 보잘 것 없는 생명을 향해 가해지는 차별과 냉대에 대한 연민의 동화는 선택받은 잔디와 고추, 버림받는 바랭이의 관계에서 비루한 소년 '네로'와 '아로아', 그리고 '파트라슈'를 연상하게 한다. 엄마와 함께한 추억의 장소 '루벤스'의 '성모승천' 앞에서 세상의 냉대와 무관심에 지친 소년 '네로'와 늙고 병약해진 '파트리슈'는 영원히 눈을 감는다.

조손가정의 아동과 유복한 가정의 착한 소녀, 그리고 노쇠하고 지친 생명이 누리는 행복한 결합…바랭이와 고추와의 격리는 '네로'와 '아로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이다. 그렇게 질긴 바랭이의 생명력은 '아로아' 고추의 칭찬과 지지에 힘입은 바가 아닐까? 잔디와 크로바는 절친 관계가 아닐까? 잡초 '네로'와 잔디 '아로아', 또한 늙은 질경이 '파트라슈'가 공존하는 우리집 마당은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평화의 영역이 아닐까? 나의 잡초 뽑기 노역은 '아로아'의 아버지처럼 그들을 갈라놓는 일인가? 나의 잡초 혐오증은 내가 그토록 증오하는 이 땅의 몰각한 기득권층의 바로 그 작태인가? 잡초에 대한 태생적인 차별과 반목의 문명에서 나는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잡초를 뽑으며 나는 혼란을 경험한다. 권력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개를 버렸던 철물점 주인은 건강해진 '파트라슈'를 가로채어 곤궁한 '네로'와 할아버지에게 되팔아 챙김-현실을 생각해본다. 사회의 구조적인 병폐의 원인에 침묵하며 오직 자책하는 사람들, 오늘날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사회에서 피해 받고 은폐되는 취약한 생명들을 되새겨 본다.

6.2 지방선거에서 은총의 민심은 결단을 내렸다. 새로운 지사와 교육감, 시장이 선출되었다. 당선자는 다양한 요구와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보잘 것 없는 잡초의 생명과 가진 자들, 그리고 우리사회의 전면에서 소외되는 고령자와 장애인들이 따뜻하게 공존하는 원주를 생각해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해 배려하는 도시, 생명의 가치를 드높여 존중하는 사회, 잡초의 입장에서 고뇌하는 성숙한 행정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