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세상의 위대한 종교들이 전하는 가르침도 그러합니다. 그리스도교의 '사랑'이나 불교의 '자비'는 사실 얼마나 단순하고 명료한 이치입니까. 그러나 수천년이 지나도록 우리 삶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간결하고 쉬운 이치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 하여 민의(民意)를 잘 헤아리고 그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민주정치는 저절로 실현될 일이니 세상에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요 현안과제가 정치문제인 것을 보면 민의를 헤아리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가 봅니다.

혹자는 사람의 마음이 저마다 달라 민의에 따른 정치가 어려운 법이라고 말합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타당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일관된 흐름이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을 보편적 민의(民意)라 볼 수 있겠지요.

저는 오늘날의 정치가 민의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는 이유는 그 다양성 때문이라기보다 기꺼이 듣고 헤아리려는 마음이 없는 탓이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합니다. 하나는 정치인 스스로가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없고 자질이 안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민초들에게 힘이 없어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귀를 기울일 이유가 없어서입니다. 저는 전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덕목과 자질은 좋은 정치를 위해 중요한 선결조건이 될 수 있겠지만 항상 모든 정치인이 훌륭한 도덕가일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근본적 대안이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는 우리 지역사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균형있고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최근 우리 지역사회가 겪어온 많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보면 민초들에게 '권력'이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학력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영세 소상공인이란 이유로, 채무자란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란 이유로, 영세 농민이란 이유로 공공정책의 중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모두는 민의(民意)를 지니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권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약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민의(民意)입니다. 민초들에게 힘이 없으면 민주주의는 유지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에 승승장구한 민주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시민의 힘을 키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일찍이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이 말씀하신바 있지 않습니까.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야 오류가 없다. 그러니 문을 활짝 열고 아래로 흐르라.' 민초들과 크게 어우러지고 그들을 중심에 모시면 반드시 답이 보이고 길이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