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은 6.10항쟁 23돌을 맞은 기념일이었습니다. 23년 전 전국을 뒤덮었던 시민들의 함성으로 독재정권으로부터 항복 선언을 받아내고 잃어버렸던 고귀한 자유와 권리를 쟁취한 뜻 깊은 날입니다.

그러고 보면 불과 이십팔년 전은 마음대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게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기였고, 김지하 시인의 글처럼 어두운 골목길 담벼락에 '민주주의 만세!'라는 글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암울한 세월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사복경찰들은 출근하는 시민들 가방 속 도시락까지 뒤지는 일조차 당연시 하였고 조금이라도 저항을 하면 여지없이 가둬 버리던, 온 세상이 미쳐 돌아가던 시기였습니다.

아주 거대한 철옹성과 같던 군부독재정권에 맞서, 분연히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에 나섰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통일에 밑거름이 되고자 자기 목숨 마저 내던지며 분신과 할복자결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찬찬히 생각해 보면 더없이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젊은이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은 혹시 자기 자식들도 독재타도운동에 나서지나 않을까? 혹시 잡혀가지는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며 지내던 그야말로 참혹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십년 후, 우리들이 민주화가 다 이뤄진 듯 착각하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구보수세력들은 잠시 움츠렸다가 다시 권력을 잡고는, 예전처럼 암울한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정경유착은 물론이려니와 보수언론과의 야합으로 '소통과 화합'은 커녕 각 부문에서 다양한 가치들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또 다시 '좌빨'이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국민들의 견제심리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니 야당으로 하여금 단일화를 하도록 강요했고, 무능해 보이지만 민주당에 표를 밀어주어 견제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부에선 국민이 승리했다고들 하지만 승리는 아직 없습니다. 선거 후에도 청와대는 아무 반성 없이 모든 것이 홍보부족이라며 가던 길을 계속 가겠다는 배짱을 부리는걸 보면 우리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위 4대강사업에 대해서도 정부여당은 국민뿐만 아니라 4대종단 지도자들이, 심지어는 소신공양까지 하며 반대해도 귀 기울이기는 커녕 오히려 백성들에게 반성하라고 윽박지르고 있으니 어찌 해야 합니까?

흔히 원주를 '민주화의 성지'라 합니다. 70년대부터 민주화를 앞서 이끌어주셨던 고(故) 지학순 주교님,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 김지하 시인 등 수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어떤 원주입니까? 도내 최고의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상지대학교를 과거 사학비리의 결정판으로 만들어 버렸던 구(舊) 재단측에 넘겨주려고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가 말도 안 되게 벌이고 있는 정이사 선임결정은 원주시민들의 자존심을 농락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짓밟힌 자존심을 찾기 위해 시민 여러분이 힘을 보태야 합니다. 이제 우리 원주시민들이 나서서 진정으로 '민주화의 성지'라는 이름에 걸맞는 그런 원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제 새로운 과제를 받았을 뿐입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앞으로 더욱 가열차게 투쟁하라는 그 숙제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켜야 하고 더 나아가 내 이웃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 당할 때 함께 지키려 할 때에만 나의 자유도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민주화운동에 몸 바치신 선배열사님들, 그리고 오늘도 이 땅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헌신하시는 여러분들의 힘겨운 싸움에 경의를 드리면서 통일의 그날까지 다함께 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