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장2동 장양초등학교 교정에는 '충견비(忠犬碑)'로 전해져 오는 비석이 학교담장 옆에 세워져 있다. 학교정문을 지나 왼쪽으로 20여 미터 들어가면 높이 1미터 가량의 거친 화강석 사각기둥이 보이는데 이 돌기둥에 대해 '원주의 지명유래('91 134p)'에 따르면 "원래는 우성아파트 부근 적동입구 길가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1970년대 말 현 위치로 옮겼다"면서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전형적인 개전설로, 술이 취해 쓰러진 주인을 구하고 죽는다는 내용이나 비면에는 '孝子元氏'라고 되어 있어서 연유를 알 수 없고 건립시기도 알 수 없다"고 기록하고 있다.

충견비에 '효자 원씨'라! 앞뒤가 맞지 않는데 호기심을 갖고 탁본을 해보았다. 첫자인 효(孝)자는 크게 마모되어 확인이 어렵지만 나머지 세글자는 윤곽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지명유래에 기록과 같은 글씨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좀 더 비석의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주변 어르신들을 찾아 탐문해 보았으나 정확하게 유래를 알지 못하였고, 비석이 처음 있던 우성아파트 뒤쪽에 사는 원규희(71세 축산업)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어릴 적 그 비석이 있던 곳이 저기지" 라며 가리키는 곳은 원규희 씨가 사는 집 위로 조그만 소나무와 잡목으로 우거진 작은 숲이 있는 입구의 소나무 아래다. 소나무 숲속에는 10여기가 넘는 오래된 산소가 있고 비석과 상석을 갖춘 산소도 있다. "우리 선친들의 산소인데 잘 관리하지 못해 안타까워……." 라며 말끝을 흐린다. 산소군 뒤로는 동부우회도로를 개설하느라 산이 잘려져 나갔지만 산소가 있는 지역은 그래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혹시 이 산소의 주인들과 돌기둥의 '孝子元氏'가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원규희 씨에게 족보를 빌려 원규희 씨 선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다가 특이한 기록부분에 눈길이 갔다.

원주원씨족보(原州元氏族譜) 기축보(己丑譜 1985) 2권과 8권에 시조 원익겸(元益謙)의 15세손 여해(汝諧)와 23세손 석명(錫命) 사이에 묘(墓)위치에 '孝門街(효문가)', '紅門街(홍문가)'로 12명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옛날에 높은 벼슬을 했거나 충신, 효자, 열녀 등 충절을 지켰던 사람들을 기리기 위하여 나라에서 표창한 내용을 홍패나 청패에 써서 솟을 대문 위쪽에 내걸었다. 이것이 문패의 시작으로 '홍'은 충신, 효자, 열녀의 일편단심 붉은 마음을 뜻하며, '문'은 그 사람의 가문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그가 사는 마을을 포함시킨 지역을 뜻하기도 한다."

15세손인 여해(汝諧)는 관란 원호(元昊)의 직계자손으로 넷째아들 효곤(孝坤)이 5대손이 된다. 원주시에서 발간된 원주학술총서 제9권 '觀瀾 元昊硏究(관란원호연구)' 77p에서 "4남 효곤의 묘소는 판부면 서곡리 내남송 정간공(원호)의 묘소 앞에 소재하며, 죽산 안씨와 합장이다. 후손으로 장남 원경희(元景禧, 생원공)의 후손은 북한지역(안악, 은률, 장단, 신천)에 거주하며, 차남 원경우(元景祐, 학생공)의 후손은 주로 원주 소초면 장양리(현 태장2동 적동, 장전) 등에 거주한다."고 하였으며, 1598년 여해(汝諧)를 비롯하여 1703년 22세손 처인(處仁)까지 8명(족보에 '孝門街'로 기록된)이 원규희 씨 집 위쪽에 묘지를 쓰고 있다.

관란 원호(元昊)는 '觀瀾 元昊硏究(관란원호연구)'에서 사후(死後) "조선사회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15세기지만, 조선 사람들의 의식세계로 돌아와 강렬하게 기억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였다."고 밝히고 있으며, "사육신의 복권(숙종17 1691년)과 단종 추복(숙종24 1698년)이 마무리" 되면서 이후 원호(元昊)에 대한 추승작업이 시작되고 1699년 정려(旌閭)되었다.

'觀瀾 元昊硏究(관란원호연구)'에서 당시 관란 원호(元昊)에 대한 평가는 "단종에 대한 절의(節義)…실천…부모상과 마찬가지로 여막(廬幕)을 설치하고 3년 동안 복상(服喪)하였다. 후일 원호가 '생육신(生六臣)'으로서 그 절개를 높이 평가 받을 때 주목받는 점도 이것이다"라고 하여 충(忠)과 효(孝)를 병행하여 실천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태장2동 적동2길 우성아파트 뒤쪽에 있는 원주 원씨 묘지군은 관란 원호가 추승되기 시작할 무렵쯤에는 이미 8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던 시기로 원호의 추승작업과 함께 충과 효를 상징하는 표시로 장양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孝子元氏' 표지석이 이 시기쯤에 이곳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 원씨(원성백계)족보가 최초로 제작된 것은 1739년 '기미초간본(己未初刊譜)'이다. 족보에 산소 위치를 '효문가(孝門街)'과 '홍문가(紅門街)'라고 기록한 것은 산소위치가 효자나 충신가문임을 상징하는 지역임을 의미하는 것이고 처음 족보를 만든 시기도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표창'과 '군신의리(君臣義理)'를 확대, 절대화하고 그 문화를 널리 강조하는 것이 그 시대의 흐름임을 감안해 보면 원호의 직계후손들의 산소가 집단화되어 있는 이 지역을 충과 효를 상징하는 가문 산소임을 나타내는 의미로 족보에 산소의 위치를 '효문가(孝門街)' 또는 '홍문가(紅門街)'라고 기록하였을 것이다. 또한 그 표시로 사각 돌기둥에 '孝子元氏'라 새겨 이 지역이 원주 원씨의 효자 후손들이 묻혀있음을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표시였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묘지의 존재와 함께 '孝子元氏' 표지석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면서 주변사람들에게 잊혀지다가, 전형적인 개전설의 특징이 '주인', '술', '잔디' 또는 '산소'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에 남다른 표지석과 주변의 넓게 형성된 산소와 잔디를 본 주민들이 비에 '孝子元氏'라 기록되어 있지만 보통의 비석과 다르고(형태를 갖추지 않은 사각 돌기둥에 기록해서 인듯함) 길가에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어 주변의 산소가 있음을 미루어 '충견비'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이 작용되었을 것이고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의미 있는 비석을 방치할 수 없어 학교로 옮겨 놓았다가, 그것이 오늘날 지명유래에 '충견비'로 기록되는 상황까지 왔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점은 '孝子元氏'라는 글자에 대해 누구도 관심 갖거나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역사기록이나 문화에 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동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