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근(75) 옹은 '쇠의 연금술사'였다. 무쇠가 그의 손에 닿으면 칼이 되고, 도끼가 되고, 낫이 됐다. 손톱크기 만한 장식용 도끼도 만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꽃도 만들고, 나비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재형 연금술사로 불리다 과거형으로 바뀐 건 지난 5월 7일 대장간 문을 닫으면서부터다.

17세 때 시작했으니 무려 58년간 쇠는 제2의 반려자였다. 아내 정말순(70) 여사와 지낸 시간보다 쇠와 함께 보낸 시간이 훨씬 많다. 그래선지 쇠를 손에서 놓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최근 보름간 서울 아들네 집에 기거하며 통원치료를 받고 얼마전 귀향했다.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쇠와의 질기디 질긴 인연이 끊어지자 몸이 스스로 알아서 이상반응을 일으킨 게 아닐까 싶게 느껴지기도 한다.

쇠와의 첫 데이트는 6.25 전쟁이 휴전되기 전이다. 17세 되던 해 중앙시장 인근 광덕철물점에 입사했다. 입사라고 해봐야 월급 대신 밥을 먹여주는 게 고작이던 시절이었다. 이곳에서 대장간 일을 배운 게 평생 반려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이 일대는 하꼬방이 길게 늘어섰고, 미군부대에서 몰래 빼돌린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가장 컸다.

그런데 철물점 주인이 군에 징집되면서 제2의 인생이 펼쳐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독립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급한대로 봉산동에 터를 잡았다. 당시 겨울이었는데 대장간 최고의 보물인 화덕을 만들어 덥히는 과정에서 많은 연기가 피어오르자 경찰서에 신고가 접수됐고, 경찰서에서는 화덕을 부수라고 명령했다. 이후 지정면 간현리, 무실동 등을 전전하다 터를 잡은 곳이 마지막까지 머물던 중앙시민전통시장 인근이다. 대장간 상호는 형제대장간으로 정했다.

새마을운동이 절정을 이루던 1970년대에는 대장간 문턱이 닳아없어질 정도였다. 농기구를 미처 만들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것. 괭이, 쇠스랑, 낫, 호미, 칼 등 쇠로 만들 수 있는 농기구는 모두 불티나게 팔렸다. 이 때는 5명이 한조가 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쇠를 달구기 위해 1명은 연신 풀무질을 해댔고, 1명은 쇠를 모루에 받치며 모양새를 가다듬었으며, 나머지 3명은 번갈아가며 연신 망치질을 해댄 것. 시뻘겋게 달군 쇠가 점차 모양을 갖춰가는 과정은 대장장이로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월급쟁이보다 훨씬 많은 돈도 모을 수 있었다. 당시 함께 일하던 직원 조선식 씨는 지금 홍천 삼마치고개 인근에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대장간 문을 닫는 과정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세를 꼬박꼬박 납부하며 대장간을 꾸려왔는데 건물주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간판을 내리게 됐다고 한다. 장성한 자식들도 이젠 쉴 때가 됐다고 말렸다. 일년 중 문을 닫은 건 꼭 3일이었다. 설 명절 때 이틀과 추석 당일 문을 닫은 것 외에는 항상 열었다. 출근시간은 오전7시로 못박았고,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는 문을 닫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쇠를 손에서 놓는 결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몸에 이상이 온 것도 쇠를 놓고 나서니 쇠와의 인연이 질기긴 질기다.

그래도 아직까지 물어물어 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비록 쇠를 달궈 연장을 만들 수는 없지만 칼이나 가위를 가는 솜씨는 여전히 일품이기 때문. 쇠의 성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대장간에 머문 시간이 집에서 지낸 시간보다 훨씬 많지만 아들 삼형제는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웠다. 첫째 병호(49) 씨와 막내 병수(45) 씨는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고, 둘째 병철(47) 씨도 건설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 몇년 전에는 원동에 2층집을 지었다. 장 옹은 "늘그막에 집에 손을 대지 않도록 최고급 원목으로 집을 지었다"면서 "대장장이 인생 58년이 후회스럽진 않다"고 말했다. 원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중 마지막 대장장이로 기억될 것 같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