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진 건등산이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모습으로 주민들 앞에 돌아온 계절이다. 단풍이 들기 전 한 덩어리의 녹음이었던 지난 여름에는 온갖 격설(시끄럽기만 하고 뜻이 통하지 않는 때까치 소리들)만 난무했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그랬고 다가올 눈 내리는 한 겨울에도 변함없이 묵묵히 푸르를 소나무들이야말로 이제야 건등산의 진정한 지킴이이었음을 보여주는 진짜 건등산의 주인공이자 문막의 희망이 아닌가 싶다.

발전이라는 무분별한 탐욕과 돈의 논리에 의해 2만의 문막 읍민이 염려했던 건등산에 원주시 신종플루는 이미 감염되어 시작되었다. 본 의원이 감히 진단한다면 20년전에 부활된 지방자치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생긴 질환으로써 그 후유증은 족히 한 세대는 지속될 것 같고 상처의 흔적은 영원히 치유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건등산 허리춤에 도망 못 가게 화약을 박아 천만년 묵은 검은 바위까지 터뜨리고 왕건을 비롯한 위인들의 숨결속에서 1천년간 함께했던 수목들은 전기톱의 칼날아래 화마가 지나간 듯 깔끔히 면도된 채 백정의 다음 요리 절차를 기다리고 있다. 백정은 칼날을 갈기 전날까지도 냄새나고 더러운 엉덩이 부분만 잘라 설 명절 제삿상에 올리겠노라고 호언장담하며 돼지를 키워 온 주민들을 안심시키려고 하지 않았는가?

돼지가 살았던 땅주인은 "기왕 잡는 것이라면 돼지 머리만 살려서 뭐하냐? 머리까지 잡아서 나의 땅을 굽어 살피시는 산신령께 진상하여 기부채납하여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백정과 땅주인 사이의 거래를 성사시킨 거간꾼들은 기다렸다는 듯 따끈따끈한 선지가 흐르는 간과 쓸개의 진미 맛을 본 채 입만 닦고 있다.

그간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키며 사육한 진정한 주인인 동네 주민들은 닭 좇던 개의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건등산 정상에 계시던 산신령께서는 "돼지의 머리까지 잡는 것도 도살법에 어긋나지는 않으니 계속하여라! 기특하여라!" 이제는 제발 머리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우리 주민의 애원은 백정에게 확약받은 약속을 지켜달라는 법적, 자존심 투쟁이기 이전에 강이 산을 만들고, 산이 강을 만들어 온 역사 이전과 이후의 경험속에서 우리 지역민들의 혈관속에 체득된 반성이자 함께 공존하는 지혜이고 윤리인지도 모른다.

과연 이러한 풍경을 만들기 위한 농도통합이고 기업유치를 통한 원주발전 전략이었던가? 중앙집권적 행태를 극복하고자 20년전 부활한 지방자치의 여정속에서 우리 원주시는 또다시 내부적으로도 지역을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중앙과 주변부를 나눠 통치했던 구태를 모방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시청로 1번지에 있는 소수의 눈과 상상력만으로 지역을 어떻게 재단하고 디자인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수천만년 지속되어온 지역의 특성과 장소성을 어떻게 조심성 있게 배려하고 그와 연관하여 장소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거시적 차원에서 진단하고 그 방법을 모색하는 발전 개념이고 지역자치이어야 한다고 본다.

치악산이 태백산 아래 하나의 산이 아니듯, 건등산 또한 치악산 속의 일개 봉우리가 아니다. 지방자치가 드디어 시작되던 즈음 서울 남산 밑의 외인 아파트가 전 국민이 보는 앞에 폭파 철거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막의 남산인 건등산 허리에 경관을 심히 훼손하고 가려가며 연속하여 외지인 아파트에 외지인 공장까지 유치하는 대범함은 어디에서 모방한 용기이고 발전전략인지 또 묻고 싶다. 중국 환관의 역사에 "왕을 바보로 만들고 싶으면 역사를 가르치지 말라"는 금언이 나온다. 중요한 것은 왕 일 개인의 문제가 아닌 한 국가의 백성이 고통받고 불행해지는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본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심판의 날이 도래하고 있다. 과연 어떻게 평가받을 것인지 심히 두렵기만 하다. 지금 처하고 있는 진퇴양난의 건등산 문제가 주는 교훈은 이미 지난 20세기에 위대한 미학자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께서 말씀하셨다. "전체는 부분으로, 부분은 전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