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누런 벼 이삭으로 황금빛이던 들판이 수확이 진행되면서 휑하다. 올해는 연례행사 같던 태풍도 없었고 봄부터 가을까지 벼농사를 짓기에 참으로 좋은 한해였다. 풍년이다. 예전 같으면 들판에 풍물소리가 퍼지고 농민들의 검게 그을은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고 넉넉한 인심으로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더 없이 편안한 계절이겠지만 농민들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이다.

지난 11월 3일 기준으로 쌀 20kg 도매가격은 3만4천200원인데 지난해 평균 4만160원과 비교하면 10%이상 하락한 가격이다. 주생산지인 남쪽의 농민들은 논을 갈아엎고 벼를 쌓아놓고 수매가격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올해 문막농협의 쌀 수매가격이 벼 40kg(벼 120kg을 쌀 한 가마로 본다)에 5만3천400원(장려금 3천400원 포함)으로 결정되었다. 2008년도 6만원(장려금 6천원 포함)에 비하면 10%이상의 쌀값이 하락한 것이다. 통상 논 300평당 약 5가마 반∼6가마 정도의 쌀이 생산된다. 3천평의 논 농사를 짓는다고 가정하면 올해 수익은 960만원 정도다. 평당 3천원 밖에 안 되는 수입이다.

여기서 영농비를 제하고 나면 아마도 농민수중에 남는 것은 500만원 남짓 될 것 같다. 연속되는 풍년과 쌀 재고 탓이라고 하지만 농업은 시장논리로만 풀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고 우리환경의 절대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정부는 '퍼주기'라는 명분을 걸고 대북지원을 중단했다. 현 재고물량이 약 80여만톤인데 매년 약 42만톤을 공급했다 중단했으니 현 재고는 2년치의 대북지원중단의 결과로 보아도 무방하다. 대북지원 쌀이 국내 쌀 시장의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책에도 기여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정부는 갑자기 지난달 옥수수 1만톤을 북한에 보내겠다고 제안했고 그 내용은 약 40억원을 들여서 수입옥수수를 사서 주겠다는 내용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은 남아도는데 대북지원은 돈을 들여 옥수수를 사주겠다는 것이다. 옥수수를 주는 이유는 군수용으로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우스운 이야기다. 쌀은 군수용으로 쓰이고 옥수수는 군수용으로 쓰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수입 옥수수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재배했는지, 유전자 변형농산물(GMO)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아무리 나쁜 이웃이라고 하더라도 생명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되어 있는 먹을거리 가지고 장난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흔히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약 40여년 사이에 농업인구는 80%에서 6%로 줄고 도시인구는 20%에서 94%로 변화되었다. 농촌은 고령화된 지 오래고 마을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농지는 국민의 생명을 살리는 보고에서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어버렸고 농사를 짓는 것은 천한일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식량자급율은 25%밖에 되지 않고 쌀을 빼면 5%도 안 된다. 우리의 먹을거리는 어디서 어떻게 재배 되어 어떤 유통과정을 거쳐 내 앞에 왔는지도 모르는 수입농산물로 범벅이 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농업인구는 계속 줄 것이고 우리농업은 어찌될지 모른다. 농자천하지졸(卒)로 만드는 수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을 우롱하는 정책과 사회의식이 지속되고 있다.

해월선생은 '밥 한 그릇을 알면 만사를 안다'(食一碗萬事知)라고 했다. 원주의 큰 스승이신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밥 한 그릇에 온 우주를 머금고 있다'(一碗之食含天地人)고 했다. 오늘 우리가 대하는 밥상을 들여 다 보라. 우주의 섭리와 함께 한 농민의 노고와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깃들어 있는 뭇 생명들이 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나부죽이 엎드려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