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대법원에서 존엄사 판결이 확정됐다. 그동안 존엄사에 대해 거론되다가 이제는 더 미뤄서는 안 된다는 시대적 인식 때문에 최종 판결을 내린 듯 한데 '존엄사 판결'은 바로 부모 사형선고와 같다는 생각에 착잡한 심경을 금할 길 없다.

존엄사 판결이 왜 슬픈 판결인가?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 목숨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고 인위적으로 빨리 숨을 멈추게 해도 좋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 슬픈 이유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병이 들어 치료해도 낫기는 고사하고 고통이 가중되므로 회생 불가능한 환자를 더는 연명 치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확정해 달라고 소청한 것은,죽음에 이른 환자나 의사가 아닌 바로 환자 가족이 요망하는 사항에 손들어주는 것이 존엄사 인정법이다. 물론 이 법을 인정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주치의와 입원한 병원 의료전문위원들의 합의와 최종판결을 거친다. 존엄사 판결이 나면 모든 의료행위를 중단하게 되고 바로 숨을 멈추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과 사의 갈림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존엄사 판결에 깊은 관심을 갖고 더러는 자신이 존엄하게, 또는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지, 낯선 판결에 대한 법률적 이해를 구하기 위해 관계전문가에 문의를 하는가 하면, 존엄사에 대한 설문조사에도 응답하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사람은 누구라도 세상에 태어나면 한번은 필연코 죽는다. 하지만 '행복한 죽음'이니 '존엄하게 죽는다'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미화와 위로일 뿐, 죽는 마당에 행복하다고 하는 표현은 필자의 장서 1천여권의 책 어느 구절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40여 년간 글을 쓰면서도 한 번도 행복한 죽음이라고 써 본 적도 없다. 다만 존엄사 판결이 나고 언론에서 행복한 죽음이란 활자를 보았을 뿐이다. 인간이 자연사 하든 또는 병사하든 죽음 자체가 비참하고 서글픈 것일 뿐 행복한 죽음이란 결코 없다. 다만 자신의 최후를 비참하게 마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존엄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존엄사가 부모 사형선고라고 한 것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를 모든 의술을 총 동원해 치료해도 기사회생 할 가망이 없을 때는 환자 본인이 입원하기 전에 자신의 병을 치료하다가 만약 회복이 불가능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사전의료 지시서를 작성한 것을 근거로 하고 또한 가족들은 물론 주치의의 소견이 필연코 첨부되는 등 입원한 병원 의료전문위원들의 결정이 나야 비로서 존엄사 결정이 이뤄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환자들 대부분 입원하기 전에 아예 사전 의료지시서를 작성 서명날인 하고 입원하는 환자가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산소기와 링거줄 등에 의존해 살았다기보다 의술의 능력으로 겨우 가냘픈 숨결을 유지하는 가사상태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할 능력이 없고 보면 막다른 결정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는 존엄사 판결 초기시행이라서 신중하게 결정하겠지만 앞으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하고 또 병원들마다 자체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러면 존엄사 결정이 쉽게 이뤄질 공산이 크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근래 어느 장례식장에 가도 상주는 있어도 뜨거운 눈물 흘리는 상주가 없는 것으로 봐서도 병수발을 들다가도 내심 존엄사를 고려해 볼 것이리라 짐작된다.(중략, 전문은 원주투데이 홈페이지에 게재) 하늘아래 부모 없는 자식은 없으며, 한번 떠난 부모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으므로 절대로 부모 존엄사만은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