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동에 사는 원영택(83) 옹. 그는 매일 영동고속도로 밑으로 난 철길을 건너 만종리 '개암동산'을 오른다.

개암동산이란 이곳의 옛 지명이 개암두둑이었던 것에 착안해 원 옹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원 옹은 이 개암동산을 70년대 초부터 가꿔오고 있다. 3만3천여㎡에 달하는 선산으로 원 옹은 최근 역대 조상 묘 10기를 이곳으로 모셨다. 애초 조상을 지정면 신평리에 모셨는데 기업도시에 편입되면서 이장을 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원 옹은 이곳의 이름을 선산공원(先山公園)이라 다시 붙였다. 조상을 잘 모셔달라는 뜻에서 산자락 좌청룡의 끝에 탑도 세웠다.

원 옹은 개발사업으로 이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묘 앞에 새긴 비석을 통해 "어찌 죽은 자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실로 세상사가 원망(怨望)스럽도다. 시대의 변천(變遷)과 세운(世運)의 순환(循環)함이 이토록 무정(無情)함을 이제야 알겠노라."라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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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없이 깨끗이 살다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고민…불법 막는다고 집회 막지 말고 민중 지성에 맡겨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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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옹은 운곡 원천석 선생의 20대손으로 88년 원주대 총무과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호는 운경(雲). 73년 개암동산 한가운데 집을 지었는데, 원 옹은 이를 운경산방(雲山房)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집 앞에 비석을 세우고 "이 곳은 운경(雲)이 독서와 사색을 즐기며 소요(消遙)하던 도장이다. 운경이 일찍이 이곳에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그윽한 산중에 성지로 꾸미고자 반평생을 출입하여 정성과 애정을 쏟았다. 그러나 이제 연로하여 뜻을 다하지 못함이 한스럽다. 나의 후손들은 모름지기 이 깊은 뜻을 새겨 산중의 성지로 가꾸어 가기를 엄히 경책 하는 바이다."라고 썼다.

요즘 일과는 조상을 모신 선산공원을 가꾸고 틈틈이 집에서 고전을 탐독하는 것이다. 명상을 즐길 때도 있다. 그는 "욕심 없이 깨끗이 살다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 옹은 고 장일순 선생과 친구이다. 나이는 장일순 선생이 한 살 아래였지만 평생 친구로 지냈다. 환갑 때는 '온고낙(溫故樂)'이라는 휘호를 선물하기도 했다.

원 옹은 "어렸을 때에도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고 살았다"며 "일순이가 옥고를 치르는 동안 돌봐주지 못한 게 지금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또 "현대사에서 원주 제일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며 "벼슬에 나가지 않았던 운곡 원천석 선생의 정신에 가장 가깝게 살았던 인물이며, 운곡대상을 지정한다면 제1의 대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적한 산방에서 세상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꺼냈다. "불법을 막는다고 집회·결사도 못하게 하는데 이는 큰 잘못이다. 기겁을 해 미리 막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민중의 지성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물이 아래로 흘러야 하는 것처럼 역사가 거꾸로 가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철학을 심어주지 않는 요즘 교육을 개탄하면서도 낭만 없이 피곤함에 쪄 든 학생들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기고 버스에서도 자리를 빼앗지 않는다고 했다.

원 옹의 남은 과제는 '개암동산 - 선산공원'을 아름답게 꾸미며 인생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독서에 매진하는 것이다. 한여름 초록이 짙어진 개암동산에는 원 옹이 30년 넘게 출입하며 심은 옻나무와 목련, 회화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등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운경산방(雲山房)에 앉아 있노라면 기차에서 내려 작은 산길을 따라 운곡 원천석 선생과 장일순 선생이 운경산방(雲山房)으로 올 것 같다.

김선기 기자 sk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