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민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았던 추억의 옛 극장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원주극장에 이어 얼마 전 시공관이 철거됐다. 문화극장과 아카데미극장도 이제 오가는 사람 없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현대화가 가져온 자연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아쉬움의 끝 자락에서 지금도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62년 원주극장에 사원으로 입사해 전무까지 오른 윤광용(74) 씨가 그 주인공. 직접 영화제작에 참여해 본 일은 없지만 20대부터 한평생을 영화와 함께 살아온 인생이다.

그는 "평생을 영화와 같이 살았는데, 영화관이 철거되는 것을 보니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윤 전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원주극장이 유일했다. 입사한 해인 62년 시공관이 준공됐고 아카데미와 문화극장은 63년도와 69년도에 준공됐다. 원주극장은 정운학(90) 회장을 비롯한  3명이 함께 세운 합자회사지만 나머지 극장은 정 회장과 일가의 소유여서 원주극장에 입사한 윤 전무는 자연스럽게 시공관과 아카데미, 문화극장을 짓는 일도 함께 했다. 정 회장과는 친형제처럼 한평생을 함께 한 인연이라고.  

다방 커피가 50원하고 영화관람료가 100원 하던 시절. 당시에는 필름 복사 기술이 없어 동시개봉을 하지 못하고 원본필름을 돌려가며 지역별로 개봉했다고 한다. 필름배급업체와 영화관이 흥행수익을 나눠갖던 방식이어서 자연스럽게 영화 인구가 많은 도시부터 먼저 상영하고 소도시는 한참 후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윤 전무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는 영화는 '성춘향'. 그는 "천연색으로 처음 제작된 영화가 성춘향"이라며 "할머니들이 밥을 싸와 먹으면서 하루에 세네 번씩 성춘향 영화를 봤다"고 말했다. 표를 사 영화관에 들어오면 상영이 끝나도 내보내지 않았던 시절이라 하루에 몇 번씩이나 같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최근에 제작된 영화 중에서는 최고 흥행을 기록했던 2003년 작 '실미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라고.

그는 "문화시설이 별로 없었던 시절이라 항상 많은 인기를 끌었지만 흑백·컬러 TV가 대중화되던 시절과 석유파동 터졌을 때는 영화가 참 안됐던 시절이었다"며 "78년부터 80년까지 2년 동안은 원주극장을 관광회관으로 개조, 술을 팔았던 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관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배급사에 가서 필름을 받아오는 것이었다"며 "더 좋은 작품을 하루라도 빨리 원주에 상영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소도시라고 괄시할 때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지금보다 항상 즐겁고 행복했던 것은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그때만 해도 전기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정전돼 발전기를 항상 사용했는데 이마저 고장이 나면 영화보러 왔던 손님들이 나서 함께 발전기를 고치기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영화관람객들은 발전기를 고치는 동안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기다려 준 게 고맙다고. 그는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났겠지만, 그때는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그런지 몰라도 어두 컴컴한 극장 안에서 불평하지 않고 기다려주곤 했다"고 말했다.

2006년 4월 30일. 시공관에서 마지막으로 영화를 상영하고 나서 지금은 아카데미 극장에서 건물관리를 하고 있지만 한평생 영화와 함께 한 그의 인생에서 그 옛날 시끌벅적했던 영화관의 풍경이 떠오르고 당시 영화에 설레 했던 원주시민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김선기 기자 sk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