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국방송통신대 졸업
"잠시 쉰 뒤 다시 공부할 것"

원주에서 전국 최고령 대학 졸업생이 배출돼 화제가 되고 있다. 막강 노익장을 과시한 주인공은 지난달 25일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제1체육관에서 학위를 받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총장: 장시원) 일본학과 나광수(81) 옹.

전남 영암이 고향인 나광수 옹은 1941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혼란의 시기와 어려운 가정형편 등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해방 후 중2학년에 편입해 5학년까지 공부하다 1948년 공군에 입대했다. 6·25 전쟁을 겪으며 사천, 대구, 서울 등에서 15년간 군에 몸담았고, 군에서 배운 비행조종술로 대한항공에 입사해 25년간 파일럿으로 근무했다.

89년 정년퇴임하며 서울에서 지루한 나날을 보내다 원주로 이사 온 것이 그에겐 새로운 인생의 계기가 됐다. 지난 2001년 TV를 보다 우연히 자막으로 스치는 원주 방송통신고 모집공고를 보게 됐고, 못다한 공부의 한을 풀기 위한 그의 의지와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그막에 어린 친구들과 공부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마주해야 했다. 그는 "정문 앞에서 세 번 돌아섰다"면서 "가족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자식들의 응원에 힘입어 학교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학교에 들어섰지만 그를 맞이한 교무부장은 오히려 환영의사를 밝혔다. 고2로 편입해 열심히 공부했으나 그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새로운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졸업장을 타겠다는 의지가 불씨가 되어 공부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뜨거워졌고, 당시 담임교사는 대학진학을 권유했다. 이어 그는 원주대 합격이라는 발전을 거듭한다.

파일럿으로 일하며 여기저기 돌아다닌 경험을 토대로 관광통역과에 입학해 손자, 손녀 같은 동기들과 함께하는 동안 "창피하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한계도 있었다. 주변 친구들도 "그 나이에 무슨 공부냐"며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는 그가 하는 모든 것들을 적극적으로 감싸 안았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의 공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쯤에서 그만둘까? 기왕 시작한 거 또 해?"하며 양갈래 길에서 고민하다 결국은 한국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뭔가 해야 한다는 열정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수업과 정보전달이 인터넷을 통해야 했기에 첫 1년 동안은 헤맸다고 한다. 그러나 2학년부터는 여느 학생 못지않게 컴퓨터와 인터넷에 도가 텄다. 재미를 붙여 학교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젊은 시절 학교 다니며 못해본 걸 모두 해보자는 심산"이었다는 그는 M.T며 O.T, 체육대회까지 학교 행사란 행사는 모조리 참여했다.

동기들은 40~50대가 주류다보니 생업관계로 중도에 쉼표를 찍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최종 졸업자가 단 3명 뿐이라  졸업식에서는 꾸준히 노력한 결과가 더 빛을 발했다.

그는 한 번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신중하며 끈기 있게 끌고 가는 힘이 있다. 15년간의 군 생활이 그랬고, 무사고 비행으로      25년간 대한항공 기장으로 활동한 흔적이 그렇다. 그는 "대한항공이 생기지 않았다면 군 생활도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초창기 비행조종사로서 국가가 수여한 무궁화훈장, 석탑훈장 등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그는 "주변에서는 나이를 잊고 공부에 매진하는 열정이 다른 학생들에게 귀감이 된다며 자랑스럽다고 말하지만 나는 내가 귀감이 될 만한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단지 "꼭 해야겠다 하는 건 이를 악 물고 덤빈다"고 덧붙였다. "한다면 한다"는 게 지론이란다. 이 쯤 되면 편히 쉴 때도 됐건만 그의 열정은 쉴 틈이 없다. 그는 "경로당은 싫다"고 잘라 말했다.

그저 자식들 성장하는 데 끼어 덤으로 흘러가는 삶을 살다보면 뭔가 안에서 샘솟는 게 아니라 허물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연금도 없다"는 그는 "법정나이 60세가 되면 기차표는 끊었는데 갈 곳 없어진 사람처럼 멍해질 수밖에 없는 사회현실이 아쉽다"며 "내가 60만 됐어도 훨훨 날아다닐 것"이라며 웃었다. 그리고 "일이 없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늙어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문득 "두고 보라"며 다짐하듯 말했다. "1학기만 쉰 후 또다시 공부에 도전할 것"이란다. 절대로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꿈꾸기는 우리가 시간을 쉬이 흘려보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

김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