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는 자신과의 싸움. 더 편하고 더 쉬고 싶은 욕망을 떨쳐낸다면 내 가정과 이웃이 편하죠"　

깜깜한 새벽, 원주시내에 진눈깨비가 날리기 시작하면 이미 눈이 쌓이고 있는 행구동에선 새벽잠을 박차고 출동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제설차량이 오기도 전에 제설작업에 팔을 걷어 부치는 이유는 뭘까. 행구동의 유명인사 이강춘(46) 행구동자율방범대장을 만나보자.

보통 자율방범대장은 마을의 치안과 방범활동을 책임지는 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행구동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대소사를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 해결하는 숨은 파수꾼, 바로 그가 있는 한은 말이다.

역대 자율방범대장 중 직장인이 역임한 사례는 없었다. 개인시간까지 할애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직장일과 병행하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 게다가 원주가 고향도 아니요, 행구동에 연고도 없지만 22년을 살며 그에게 행구동은 어느덧 제2의 고향이 됐다.

영월이 고향인 그는 원주가 너무 좋아 머물게 됐고, 91년 행구동 한라콘크리트에 입사하면서 아예 둥지를 틀었다. 말 붙이고 지내던 비슷한 연배의 이웃이 자율방범대에 몸담고 있었는데 함께 할 것을 제의하면서 활동에 첫 발을 딛게 됐다. 그리고 10여년 후, 그는 방범대활동 뿐 아니라 환경정비에서부터 민원해결까지 어느새 마을 내 만능해결사가 됐다.

행구동주민센터에서는 "여기는 눈이 와도 공무원들이 출동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미 오기도 전에 홀로 제설작업을 끝내기 때문. 아무도 안하는 일을 먼저 발 벗고 나서는 이유는 뭘까.

"나 하나 힘든 것으로 주민 전체가 편하니까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말한다. 당장 7시부터 출퇴근차량이 이어질 걸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뛰쳐나가는 그다. 넋 놓고 제설차량을 기다리느니 무어라도 해보겠다는 의지일까. 그는 차 안에 염화칼슘과 삽을 싣고 '얼음을 녹이는 또 다른 눈'을 도로 위에 수놓는다.

눈발이 다그치면 급한 김에 가정집에서 가져온 연탄재를 뿌린다. 그러면 발이 묶인 버스도, 등교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차에서 내려 눈길을 헤치며 걷는 학생들도, 길게 늘어선 출근차량들도 볼 일이 없다. 주민들은 누가 눈을 치웠는지 알지도 못하지만 그는 원활하게 흐르는 차량들을 보며 뿌듯해 하는 것으로 동기를 얻는다.

다른 대원들도 있는데 왜 혼자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시에서도 미처 작업을 못하는 시간대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 회원들을 부르는 일은 못 하겠다"고 말했다. 평소 대장을 따라 군말 없이 열심히 활동해주는 회원들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것.

그는 자율방범대 활동을 하면서 주위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는 게 습관이 됐다. 어느  날은 밤 11시경 온몸이 젖은 채로 떨고 있는 어르신을 발견하곤 차로 모셔 자초지종을 여쭈었더니 병원에 입원시킨 후 연락도 없는 자식에 대한 미움과 회의로 다리에서 떨어져 자살을 시도한 경우였다.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병원까지 모셔다 드렸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기억이다. 그런가 하면 한 연인이 집 문이 잠겨 발을 동동거리는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기도 하고, 타이어가 터진 줄도 모르고 운행하는 여성운전자를 세워 타이어를 교체해 주는 일도 그의 몫이다.

모든 일에 보람을 갖고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그이지만 힘든 일도 있다. 바로 자율방범대장 활동이나 마을 일 때문에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할 때다. 그는 "시청에서 받는 교육이나 마을 회의 및 행사가 대개 낮에 이루어지다 보니 근무를 빼먹어야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게다가 운수업을 하고 있어 딱 달리는 만큼만 수입이 되다 보니 기본 생활비조차 보장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내 이상림(41) 씨는 남들처럼 적당히 자기 것 챙기기를 바라지만 불만만 쌓여갈 뿐 말리지는 못한다. 그는 "아이들은 어릴 적엔 같이 안 놀아준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활동현장에 친구들까지 데려와 자원봉사를 자처한다"며 웃었다.

행구동은 체육대회를 하지 않는 대신 매년 걷기대회를 하고 있는데 이 행사를 주최하는 것도 자율방범대요, 국제걷기대회 행사 때마다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라면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도 자율방범대가 하는 일이다. 특히 국제걷기대회의 경우 제공되는 라면과 단무지에 큰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들이 많아 "그들에겐 원주에서 겪은 또 다른 작은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어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고 있다.

이웃에게 베푼 정성이 되돌아오는 것인지 회사에서도 그를 인정해 방범대 초소를 컨테이너박스에서 조립식 건물로 새 단장할 때 회사에서 건설자재를 지원했다. 이렇다 할 수입은 없어도 어느새 저축한 돈을 모아 얼마 전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사람들은 "기왕 이사 가는 거 시내에 있는 아파트로 가지 그러냐"고들 하지만 그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

그는 "봉사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더 편하고 더 쉬고 싶은 욕망을 떨쳐낸다면 내 가정과 이웃이 밝은 사회에서 좀 더 편하게 잠들 수 있다"는 것. 그는 "주민들이 떠나라 하기 전까지는 자율방범대 활동을 통해 열심히 뛸 참"이라며 웃었다. 

김상희 기자 sh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