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가 종방된 지도 꽤 여러 날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바이러스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많은 일들이 우리주위에 일어난다.

원주시향 명예 음악 감독이며 창원시향 상임지휘자인 정치용 감독의 인터뷰 내용에서도 베토벤 바이러스에 대해서 "다소 과장됐지만 충분히 있을법한 얘기"로 등장한다. 또한 단원들이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내용과 현실에서도 접할 수 있는 내용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우선 드라마에서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모욕적일 정도의 가혹한 단어를 쓰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지휘자가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이끌어 가고 음악을 끌어내는 것은 인정하나 현실에서 그렇게 심한말로 단원들을 대하는 지휘자는 없다.

하지만 이 역시 과거의 경우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실제로 토스카니니나 캬라얀의 경우도 리허설이나 연주 중에 심한 욕설을 하며 지휘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또한 모든 공립 교향악단의 오디션 응시자격에는 음대졸업자에 한정돼 있다. 하지만 극중에서는 예고를 중도에 자퇴한 하이든(현쥬니 분)이나 경찰 출신의 강건우(장근석 분)등 아마추어들과 이미 정년퇴직을 한 김갑용(이순재 분)이 참여하는, 드라마니까 가능한 설정도 볼 수 있다.

극중 교향악단 단원들이 시민의 날 공연을 하러가는 도중 교통체증으로 길이 막혀 공연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가는 설정은 극적인 긴장감을 위한 설정일 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왜냐하면 모든 공연에는 리허설이 있다. 현실에서는 그 시간에 이미 리허설을 마치고 식사까지도 마친 상태일 것이다.

오보에 연주로 평생을 바쳐온 김갑용이 치매에 걸린다는 설정은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부분도 "왜 하필 오보에 연주자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얼마 전 갈대에서 치매치료에 쓰이는 '파라큐마레이트'라는 성분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오보에 리드의 재료는 갈대다. 이 갈대로 만들어진 리드를 평생 입에 물고 살아온 오보에 연주자 김갑용이 치매에 걸릴 확률이 다른 인물보다 적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연주자와 행정가의 갈등도 다뤄졌다. 이 역시 있을 수 있는 설정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수년전 서울의 한 교향악단은 찢어진 드럼을 들고 연주를 감행했다는 얘기도 있다. 손상된 가죽을 바꿀 경비를 시에 요청했지만 서류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기 때문이며, 교향악단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재정과 인사 등 주요 권한을 담당공무원의 손에 맡기다 보니 늘 삐걱거리는 결과를 초래했다한다.

행정가들은 기본적으로 연주자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시각의 차이에서 오는 견해를 좁히지 못하면 그 두 집단은 분명 불행해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도 교향악단은 분명 처음 접근하기 쉽지 않은 연주단체이다.

이러한 교향악단을 드라마의 소재로 삼아 일반 대중들이 교향악단에 관심을 갖고 한발 더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어 준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그 내용의 완성도를 떠나 교향악단 관계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