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에서 살다보니 원주 근교에 있는 펜션에서 하루를 묵게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해도 강릉이나 속초 쪽으로 일정을 잡게 되기 일쑤다. 조금만 둘러보면 원주 근처에서도 알차게 여행할 만한 곳이 많은데 잘 알지 못해서 망설여진다. 그래서 아이 둘을 둔 4인 가족을 가정하여 1박2일 코스의 여행스케줄을 짜 보았다.

원주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신림면 황둔리에서 하루 밤을 묵을 계획이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원주에서 출발한다. 5번 국도를 타고 가다 신림삼거리에서 주천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신림터널을 지나면 왼편으로 고판화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까지는 비포장 길이지만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어서 제법 운치가 있다. 관람료는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판화체험비를 포함한 금액이기 때문에 절대 아깝지 않다. 한 시간  판화체험을 하고, 잔디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도 주고받으며 선선한 한 낮을 즐긴다.

3시30분쯤 풀잎을 털고 일어나 예약해둔 펜션으로 간다. 강원도의 밤은 이르게 오기 때문에 너무 늦지 않게 도착하는 것이 좋다. 늦어도 5시까지는 도착하도록 한다. 다음날 아침 감악산 등산을 하려면 감악산펜션(765-6662. 놀이터 족구장 배구장 야영장이 갖추어져 있다.) 나드리펜션(764-5888. 새로 지어 깨끗하고 강 옆에 자리하고 있다.) 펜션향기번짐(765-1105. 깔끔하다. 강 옆) 등에서 묵는다. 백련사까지는 왕복 2시간이 걸리고, 정상까지는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이곳 펜션은 침대 없이 10평정도의 크기로 성수기에는 12만 원정도 받지만, 비수기에는 흥정만 잘하면 저렴한 가격에 편안히 쉴 수 있다. 민박도 주변에 많다.

치악산황둔휴양지(764-3007)는 가장 추천할 만한 곳이다. 30만평이나 되는 산 속에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고, 주변에 등산로도 잘 조성돼 있는 대단위 휴양시설 단지다. 여름에는 야외수영장의 인기가 단연 최고. 사슴과 타조, 염소, 칠면조 등을 키우는 동물농장이 있어 아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락실 노래방도 있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면 숲속에 통나무산장이 보인다.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인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선녀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잣나무동이나 낙엽송동은 5인실 1박에 5만원이면 된다. 그러나 잣나무동은 2실, 낙엽송동은 4실 밖에 없기 때문에 미리 확인하고 예약해 두지 않으면 얻기가 쉽지 않다. 본관에는 7실이 있고, 가격은 같다. 하루 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11시까지 주변을 산책하면서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아침은 준비해 간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도 있고, 식당에서 사 먹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신림에는 아름답고 우아한 펜션이 많다. 화가 곽애리씨가 운영하는 주련골산방(763-3080). 흙으로 지은 토우팬션(762-5048).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해발 700m에 위치한 700고지펜션(763-6143)등 색다른 분위기를 위해서도 한번쯤 외박을 하는 것이 어떨까.

11시경에 짐을 챙겨 무릉도원으로 간다. 영월 동강을 끼고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다. 절경을 감상하면서 호야지리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어린이 2천원. 지리교육에 평생을 바친 호야 양재룡선생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국내 최초의 지리테마 사설 박물관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하다.

12시 정도에는 바로 근처에 있는 요선정에 올라가 보자. 1915년 주민들이 정자를 세우고 주천 청허루에 보관되어 오던 숙종의 친필시를 이곳에 모셨다. 석탑과 마애불이 있는데, 마애불 뒤쪽 바위에 앉아 주천강을 내려다보니 세월 간곳없이 떠돌던 김삿갓이 클로즈업 되어 온다. 요선정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 오른쪽 강변으로 내려가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바위들을 만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놀랍다. 꼭 들러봐야 한다.

1시가 넘으니 뱃속에서 난리가 난다. 아이들도 배고프다고 떼를 쓰겠지만, 조금 참자. 법흥사까지는 10분이면 간다. 주변에 먹을 만한 곳이 더러 있지만 그냥 지나쳐야 한다. 법흥사 입구에 신라가든(374-1413)이 오른쪽으로 보이거든 곧바로 차를 세우고 들어가자. 6시 내고향에 방영되었다는 팻말보다도 편안하고 정겹게 꾸민 집의 자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도토리묵, 두부전골, 잔치국수, 매운탕 등 메뉴도 다양하다. 감자전과 닭도리탕에 막걸리 한잔 걸치고 나니 두 시간이 후딱 사라지고 없다.

3시경 법흥사 경내를 둘러본다. 적멸보궁(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 사자산 법흥사가 웅장하면서도 겸손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연화봉이 잔잔한 미소를 보낸다. 지붕에서 자라는 풀꽃을 보고 세월을 읽는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승지중 하나. 자장율사의 발걸음이 곳곳에서 살아난다. '지혜를 밝히는 숲'에서 지혜를 얻고 내려오면 벌써 5시가 된다.

원주방면으로 88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길 왼편으로 '한반도지형'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선암마을에 있는데 우리나라 땅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것 같아 신기하기만하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아, 정말 똑같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산길을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되는 애국가의 첫 장면을 찍은 곳이라고 일러주면 아이들도 군말이 없어진다. 

벌써 6시다. 서서히 어둠이 돌아오고 있다. 원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여행이 어땠는지 아이들과 정답게 토론한다. 다음 여행은 아이들이 직접 짜 보도록 권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코스: 원주출발 ~ 고판화박물관 ~ 숙소(1박) ~ 호야지리박물관 ~ 요선정 ~ 법흥사 ~ 한반도지형 ~ 원주도착
▷지출비용: 치악산 황둔 휴양지 숙박 5만원, 점심 한 끼 4만원 안팎(저녁과 아침은 펜션에서 해 먹는다), 관람료 2만원.

고민교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