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원주투데이포털 | 6.4지방선거 맛집캘린더
 
  최종편집 : 2015.6.1 월
   
> 뉴스 > 기획특집 > 박경리 선생 유고산문 \'일본산고(日本散考)\'
     
특집: 박경리 선생 유고산문 '일본산고(日本散考)' ③
신국(神國)의 허상(虛相)Ⅱ
2008년 08월 25일 (월) 원주투데이 wonjutoday@hanmail.net
   
 
   
 

 "신국(神國)이라는 우산 속에서 비리(非理)를 합리화(合理化)해온 그들의 역사(歷史), 삶의 방식은… 제아무리 세계를 주름 잡아도 닫혀진 세계며 정신적으로 봉쇄된 세계"


 고사기(古事記) 신대편(神代篇)은 국토 기원(起源)에서 시작된다. 해월(海月)같이 떠도는 국토를 수리 고정(固定)하라는 천신의 명을 받은 이자나기(伊邪那岐)와 이자나미(伊邪那美)가 하늘 부교(浮橋)에 서서 창으로 바다를 휘젓는데 그 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섬으로 변한다. 섬으로 내려온 두 남녀 신은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섬과 바다를 낳고 산천(山川)과 목석(木石), 들판을 낳고 마지막에 화신(火神)을 낳다가 화상을 입은 이자나미는 죽게 된다. 망처(亡妻)를 그리워한 이자나기는 명부국으로 찾아가는데 이자나미를 바라보지 말라는 계율을 어겨 두 신(神)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다시는 처(妻)를 얻지 않겠다는 맹서를 하고 이자나기는 간신히 사지(死地)로부터 도망쳐 나온다.
 황천의 더러움을 씻기 위해 이자나기가 벗은 의복이 12신(神)으로 화성(化成)되고 마지막 두 눈을 씻었을 때 아마데라스(天照)와 쯔끼요미(月讀)가 태어나고 코를 씻었을 때 스사노오(素盞鳴)가 태어난다. 해와 달과 바다의 삼신이 탄생한 셈이다. 바다를 다스리게 된 스사노오는 수염이 가슴팍까지 자라는 동안 모국을 그리워하여 밤낮 없이 통곡을 하니 노한 이자나기는 다까아마하라(高天原)에서 아들을 쫓아낸다.
 스사노오는 누이 아마데라스와 작별하기 위해 승천하지만 아마데라스는 동생에게 사심(邪心) 있음을 알고 남장에 무장을 한 채 승천의 이유를 물은즉 스사노오는 사심 없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우개이(기도, 서약)로 아이를 낳겠다하며 아마노야스가와(天安河)를 사이에 두고 우개이를 한다. 그 결과 아마데라스의 모노자네(物實)에 의해 오주(五柱)의 남신이 탄생하고 스사노오의 모노자네에 의해 삼주(三柱)의 여신이 탄생한다. 그러나 스사노오의 횡포로 아마데라스는 아마노이와도(天岩戶)에 숨어버리고 세상은 암흑천지가 된다.
 8백만의 신들이 모여 숙의 끝에 아마노우즈매(天細女)가 미친 듯 춤을 추고 8백만 신들은 천지가 떠나갈듯 웃어재끼는 바람에 아마데라스가 밖을 내다보는 순간 숨어있던 다치가라오노가미(手力男神)가 아마데라스를 끌어내어 세상은 다시 밝아진다. 이 사건의 수습으로 신들이 결의하여 스사노오의 손톱 발톱을 다 뽑고 다까아마하라에서 추방한다. 추방된 그는 오호게쯔(大氣都)에게 먹을 것을 청하게 되는데, 그녀는 코, 입, 엉덩이로부터 음식을 꺼내어주어 화가 난 스사노오는 그녀를 죽인다. 죽은 오호게쯔 몸에서 누에, 벼, 조, 팥, 보리, 콩이 나오는 것을 간무수비(神産巢日)가 걷어 종자로 뿌렸으며 이즈모(出雲)로 건너간 스사노오는 머리와 꼬리가 여덟인 구렁이를 퇴치하여 구사나다(奇稻田)를 구하고 구렁이의 꼬리를 갈라서 아마노무라구모(天叢 雲)라는 검을 꺼내어 아마데라스에게 바쳤으며 구시나다와 혼인하여 많은 신(神)들을 낳는데 이 혈통(血統)이 이즈모 신화와 연결이 된다.
 대강 이상이 다까아마하라의 이야기지만 신이라는 분식(粉飾)을 털어 버리고 인간의 드라마로 회전(回轉)시켜보면, 어떤 기적도 신의 메시지도 없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다까아마하라가 어디냐는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하늘이 아닌 어느 곳, 그곳은 일본열도(日本列島) 밖에 있는 어느 육지(陸地), 다른 세상이란 얘기가 되겠고 가장 큰 역할을 한 스사노오는 흉악한 패륜아지만 한편 너무나 인간적이며 인간의 고뇌를 안은 운명의 한 사나이로서 시야 가득히 들어오게 된다. 그에 비하여 아마데라스는 폭풍의 사나이 뒷면에서 나부끼는 너울같이 서 있는 여인이다. 그녀는 해를 상징하고 있지만 해로 상징하게 된 내력에 대하여, 아마노이와도에 숨었을 적에 일식(日蝕)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추측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광명(光明)을 비추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 비로자나, 밀교(密敎)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 그 부처가 도입되었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일본(日本)에 들어온 불교가 신도(神道)의 허약한 면을 보충해 온 것은 역사적(歷史的) 사실이며, 다시 말해서 양부신도(兩部神道)라 하여 신불(神佛) 습합(習合)이 체계화되면서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위상(位相)을 아마데라스에게 옮겨 놨는지, 또는 대일여래(大日如來)를 송두리째 옮겨놨는지, 만일 이 설을 인정한다면 불교전래(佛敎傳來) 이전에 쓰여진 고사기(古事記)의 부분 개작(改作)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거의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는 쯔끼요미(月讀)를 아마데라스와 스사노오 사이에 두게 된 것도 그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한다. 개작(改作)의 흔적이 또 있다. 개작(改作)이기보다 모작이라 해야 할지 이자나기가 망처(亡妻)를 찾아 명부로 가는 대목은 희랍신화의 올폐와 흡사하다. 그러면 여자인 아마데라스가 어찌하여 만세일계(万世一系)의 황실(皇室) 시조가 되었을까. 모계(母系)사회였기에 그랬을 것이란 설(說)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샤머니즘의 수장(首長)으로 보는 견해가 옳을 것 같다. 남무(男巫)보다 상위(上位)에 있었던 당시 여무(女巫)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할 때 그 가능성은 훨씬 짙어진다. 일본(日本)의 신도(神道)자체가 비록 그 영적(靈的)부분은 소멸된 상태지만 형식면에서는 분명한 샤머니즘이기 때문이다. 언제였던지 사진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만주(滿州)의 샤머니즘 신묘(神廟)에는 일본 신사(神社)에 있는 도리이(鳥居)가 있었다. 건축양식도 신사(神社)와 같았으며 그곳 샤먼들의 신도(神刀)며 신경(神鏡)은 일본의 삼종(三種)의 신기 (神器)를 강하게 연상하게 했다.
 아마데라스와 스사노오의 관계를 여사제(女司祭)와 한 남성(男性)의 세력다툼으로도 보고 있지만 신(神)에서 사람으로 격하(格下)해보면 그들은 남매인 동시 연인(戀人)이 된다. 이들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이른바 천손(天孫)이기 때문이다. 고사기(古事記)에는 서매(庶妹)와의 혼인이 흔하게 기록돼 있고 신무왕(神武王)의 비(妃) 이스깨요리(伊須氣余理)는 남편이 죽은 뒤 서모(庶母)이기는 하지만 왕(王)의 큰아들 다기시미미(當藝志美美)와 혼인했고, 그런가하면 가루(輕太子)와 애도호시(衣通王), 이들 친남매간의 사랑과 혼인의 과정은 환희와 고통, 갈등 그 자체였으며 백성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렸고 결국 이들은 비극적 자살로 끝장내는 것을 보면 인륜문제는 역시 강한 장애요소였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아마데라스를 샤머니즘의 수장(首長)으로 본다면 범인(凡人)과는 다른 존재에 부과된 엄한 금기(禁忌)가 있었을 것인즉 그것 역시 장애요소였을 것이다. 이 절대적 장애 앞에 스사노오가 아마데라스를 연모했다면 부친인 이자나기는 과연 어떤 조치를 취했을까. 바다를 다스리라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실상은 추방이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스사노오는 모국을 그리워하여 밤낮 없이 통곡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이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해 승천했다는 대목인데 이때부터 이자나기의 얘기는 없다. 이자나기는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닐까. 하여 스사노모는 돌아왔던게 아닐까? 남장에 무장까지 하고 기다린 아마데라스의 불안, 그러나 서약이던 우개이던 간에 스사노오는 이루었고 자식을 낳은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한 사랑일 수는 없었을 것이며 그의 횡포는 고통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손톱 발톱이 뽑히는 형벌을 받은 스사노오는 다시 추방되어 고난의 길을 걷는 것이 오호게쯔(大氣都)에게 먹을 것을 구하는데서 나타난다. 오호게쯔가 코에서 입, 엉덩이에서 음식을 꺼내어주었다 하고 노한 스사노오가 그녀를 죽이니 그의 몸에서 온갖 종자가 나왔다는 얘기는 스사노오의 새로운 출발을 시사한다. 신천지에 내려선 그의 심기일전의 모습, 그는 종자를 구하려고 어딘가에 갔을 것이며 수모와 박대를 딛고 농경(農耕)의 시대(時代)를 열었다고 풀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들과 함께 스사노오는 신라(新羅)를 내왕하며 선재(船材)를 구해왔다는 것, 백성들에게 식목(植木)을 가르쳤다는 그런 기록이다. 그럼에도 그는 이즈모에서 구렁이를 퇴치하고 얻은 칼을 아마데라스에게 바치고 있다. 왜 칼을 바쳤을까. 승복한 때문일까 그리움 때문일까. 그의 가슴속에 여전히 그리움이 타고 있었던 것일까.
 이즈모의 신화는 다까마하라에 비하여 치졸하고 극적인 효과도 미약하다. 무대는 분명한 일본열도(日本列島)이며 일본색채를 농후하게 띄고 있고 오호구니누시(大國主)가 주인공이다. 아름다운 야가미(八上)라는 여자에게 구혼하기 위해 형제들 80신(神)과 함께 오호구니누시가 길을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는 도중 털이 뽑혀서 벌거숭이가 되어 울고 있는 토끼를 구해준 오호구니누시에게 토끼는 축복과 야가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을 예언한다. 과연 야가미는 오호구니누시를 선택하지만 구혼에 실패한 80신 형제들의 간계(奸計)때문에 오후구니누시는 두 번이나 죽음에 이르렀고 그때마다 미오야(御祖)와 간무수비(神産巢日)에 의해 살아나지만 박해의 손길이 끊이지 않아 스사노오가 있는 네노구니(根國)로 달아난다. 그곳에서 스사노오의 딸 수세리(須世理)와 결혼한 오후구니누시는 칼과 궁시(弓矢: 활과 화살)와 고도(琴)를 훔치고 아내를 동반하여 몰래 빠져나오는데 뒤쫓아온 스사노오는 요모츠히라사카(黃泉比良坂)에 이르러 대국주(大國主)가 되라! 하며 외친다. 오호구니누시는 가지고온 칼과 궁시(弓矢)로 80신을 정벌하고 국토 경영에 착수한다.
 이 밖에 번다한 연애사건들이 전개되지만 무대는 다시 다까아마하라로 돌아가 돌연 아마데라스의 도요아시하라(豊葦原)의 미즈호(水穗)의 나라는 나의 아들 아마노오시호미미(天忍穗耳)가 다스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린다. 우여곡절, 그런 끝에 오호구니누시는 나라를 아마데라스의 자손에게 바침으로서 무혈혁명이 성사된다. 중권(中卷)은 소위 제기(帝紀)로서 권력쟁탈과 왕(王)들의 연애행각(戀愛行脚)에 관한 것이 대부분이며 후일의 원씨물어(源氏物語)와 맥을 같이 하고 있으며 일본문학(日本文學)을 관류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태양신(太陽神)인 아마데라스, 앞서도 말했었지만 그에게서는 기적이나 메시지가 없었다. 현실의 실질적인 문제, 상속(相續)에 관한 주장이 있었을 뿐 약속, 계율 같은 것은 없었다. 현실적이요 실질적인 오늘의 일본(日本)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위력(威力)에는 전율을 느낄 지경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근대화(近代化)에 남 먼저 편승할 수 있었고 오늘을 누리게 됐는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유물적이며 현실적인 그들의 집열판(集熱板)이 신국(神國)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신국(神國)이라는 우산 속에서 비리(非理)를 합리화(合理化)해온 그들의 역사(歷史), 삶의 방식은 그러나 제아무리 세계를 주름 잡아도 그것은 닫혀진 세계며 정신적으로 봉쇄된 세계다. 봉쇄의 어휘에는 짙은 기만이 내재(內在)되어 있다. 일본(日本)에는 불교가 들어가면 빈 상자가 되어버린다. 유교가 들어가도 빈 상자가 되어버린다. 그들은 일본화(日本化)라 하지만 일본화의 실체(實體)에 대해선 무심하다. 그러나 종교적 근거, 사상적 내용이 없는 신도(神道)에 대하여 그들 지도층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숨겨질 수 없는 일이다. 신불합일(神佛合一)이 있었는가 하면 신불분리(神佛分離)의 주장이 있었고 신유합일(神儒合一)이 있었는가 하면 신도(神道)를 독자적으로 종교(宗敎)와 도덕(道德)으로 통일하자, 그러나 그것도 엉성하니까 신사(神社)를 종교(宗敎)와 분리하여 조상숭배의 도덕적(道德的) 부분만을 강조(强調)하는 식으로 하자, 그것은 신도(神道)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천만에! 그런 것들은 깃발의 색깔로서 이리저리 변해왔지만 깃대인 대막대기는 여전히 튼튼하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종교나 도덕의 본질(本質)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것들은 적시적소에 써먹는 도구(道具)에 불과하고 어떤 권력이든 도구화(道具化)하려는 속성은 있게 마련이지만 일본(日本)처럼 철저한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그런 그들에게 내세관(來世觀)이 희박한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유한(有限)을 잘 소화시켜온 민족이다. 유한(有限)은 인간(人間)의 숙명이지만 그러나 인간(人間)이기 때문에, 생명이 오는 곳 생명이 가는 곳, 그 한(恨) 때문에 사람은 유한(有限)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치는 것이며 그 몸부림은 신의 축복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신의 축복이 없는 나라 일본 역사상(歷史上) 한번 기회가 있었다. 시마바라(島原)의 난(亂)으로 까지 몰고 갔으나 섬멸되고만 천주교도(天主敎徒)들, 답회령(踏繪令)으로 수 없는 순교자를 냈던 그 때, 아마데라스를 뛰어넘고 영혼의 구제로 향한 죽음들이 있었다.
 우라시마타로우(浦島太郞)라는 일본(日本)의 설화(說話), 생각이 난다. 어부 우라시마가 용궁에 가서 놀다가 상자 하나를 선물로 받아 뭍으로 돌아온다. 세상은 변했고 아는 얼굴 하나 없었고, 그는 바닷가에서 열어보지 말라는 상자를 연다. 순간 그는 백발의 노인(老人)이 된다. 일본은 백발을 두려워하는가. 그러나 백발이 될 사람은 소수이며 사고(思考)의 자유(自由), 발랄한 창조의 생명은 무수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빈 상자를 열어야 한다.

원주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 원주투데이(http://news1042.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기획특집: 시민의 발 시내버스, 인구
사건사고 브리핑
귀래 사랑의집 48년 악연 끊었다
4월 원주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제16회 장미축제…축하공연·체험행사
행구동 아파트 거래현황…현대아파트 3
제11회 청소년축제 성황
원주천에서 수달 서식 목격
(주)인성메디칼 원주 이전 지역주민
원주문화재단,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대표이사 오원집  |  Tel : 033)744-7114 / Fax : 033)747-9914
발행인: 심형규  |  편집인: 오원집  |  등록년월일: 2012년 4월 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Copyright 2009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jtoday1@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