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창작노트] 큰 눈을 기다리며 |
|
|
|
|
|
|
- 진 혼 곡 - 임 일 진
한 댓새 쉬지 말고/
펑펑펑/
주먹만한 함박눈이여 내려라/
내리고 내리고 내려서 쌓여라, 뒹구는/
잎새들 허리 꺾고 누운 풀대궁이들/
시커먼 물웅덩이와 강물들/
쓰레기 더미와 바싹 마른 공기를 덮고 바이러스에/
병든 기계, 아물 줄 모르는 상채기들과/
뒤집어 쓴 가면을 덮고 /
새빨간 혓바닥을 덮고/
상자 속의 아도물, 흐물흐물한 그 덩어리마저/
고추 당추보다 맵고 솜이불보다 푸근한/
큰 이불로/
한 댓새 푹 덮어 영영 잠재우는/
큰 눈이여 내려라, 펑펑펑/
다지면서 내려라/
(2000.11.17)
정말이지 요즘처럼 울화가 치밀고 속 상하고 안스러움과 답답함이 엄습하는 세상엔 그저 펑펑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아니 아주 한 댓새, 한 열흘이라도 내려서 그 더럽고 못마땅하고 아니꼽고 치사스런 존재들을 깊이 묻어 버렸으면 싶다.
진실은 이제 거짓과 가짜에 밀려 가뭄에 콩나듯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리고 믿을 사람도 믿을 물건도 없는 세상, 이게 바로 우리가 지금 발 붙이고 살고 있는 우리들 공동체의 실상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며칠 전에 대관령 쪽에 초설이 쌓였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갑자기 눈, 눈 중에도 무릎까지 묻히는 저 어느 핸가의 폭설이 떠올랐었다. 정말이지 눈이라도 실컷 퍼부었으면- 신물이 나는, 그리고 맥이 탁 풀리는 요즘 같은 세상엔 그저 펑펑 눈이라도 퍼부어 지겹고 울화가 치미는 것들을 깡그리 덮어 지워버렸으면 후련할 것만 같다.
눈이지만 깊이 묻어버린다는 것, 어차피 그건 하나의 매장행위일 것이다.
나는 귀기울이고 퍼붓는 눈송이들의 진혼곡을 듣는다.
○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1972)
○ 시집 「광야에서」와 중앙지면에
시 산문 다수 발표
○ 현재 한국문협 원주지부 고문
|
|
|
|
|
|
|
|
|
|
 |
전체기사의견(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
|
|
|
| 전체기사의견(0) |
|
|
|
|
webmaster@wonjutoday.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