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원주투데이포털 | 6.4지방선거 맛집캘린더
 
  최종편집 : 2015.6.1 월
   
> 뉴스 > 기획특집 > 박경리 선생 유고산문 \'일본산고(日本散考)\'
     
특집: 박경리 선생 유고산문 '일본산고(日本散考)' ②
신국(神國)의 허상(虛相)Ⅰ
2008년 08월 18일 (월) 원주투데이 wonjutoday@hanmail.net
   
 
   
 


"일본의 역사왜곡은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

"만국의 종주국이라는 과대망상이 후일 세계정복 꿈꾸는 망상으로 발전"

 1890년대, 신국일본(神國日本), 영(靈)의 일본(日本) 등 일본에 관한 저술로 알려진 고이즈미 야구모는 희랍계 모친을 둔 영국인으로 그의 경력을 보면 신문기자, 번역가, 비평가, 그밖에 진화론(進化論) 신봉자이며 불교연구도 하고. 일본으로 건너온 그는 고이즈미 세츠코(小泉節子)와 결혼하여 귀화했는데 여러 방면의 교양을 쌓은 지식인, 특히 진화론을 신봉했다는 사람이 신국(神國)이라는 제목 하에 글을 썼다면 역설적이거나 혹은 비판적인 내용으로 짐작하기 쉬울 것이다. 내 자신 그 책을 읽지 못했으니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지만 처음 시마네(島根)현의 마쯔에시(松江)라는 작은 도시의 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던 그는 13년간 체류하면서 동경제대(東京帝大)와 와세다 대학(早稻田大學)의 초빙강사가 되었고 죽은 후에는 종사위(從四位)의 추서가 있었던 것을 보면 그의 저술이 일본에 유익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실은 학창시절 수필이었던지 뭐 그런 그의 글을 읽은 것 같기도 하지만 희미하고 다만 야구모가 일본을 세계에 소개하고 선전한 서양인(西洋人)이라는 점만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일제치하(日本治下)에 있었던 시절이라 감정적으로 결코 유쾌해질 수 없는 인물이었다.
 야구모의 책자 제목을 인용할 것도 없이 신국(神國)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용어다. 생각해보면 일본만큼 하늘 천(天) 자(字)와 영접할 신(神) 자(字)를 애용하는 나라도 그리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연표(年表)만 뒤적여도 그런 글자는 수두룩하다. 왕의 이름도 그렇고 일반인의 성씨 지명 등, 거룩하고 덩치 큰 글자를 푸짐하게 쓰고 있다. 진무(神武) 오우진(應神) 스진(崇神) 신공황후(神功皇后) 덴지(天智) 덴무(天武)라는 왕, 왕후 이름에서부터 아마다(天田) 아마노(天野) 가미야마(神山) 가미오(神尾) 가미치카(神近)라는 성씨, 지명으로 떠오르는 것에 고베(神戶), 감다(神田) 아마시로(天城) 아마쿠사(天草), 연호에도 아마승(天承) 아마지(天治) 아마로쿠(天祿), 아마해(神兵)에서 군시(軍神) 가미가제(神風) 가미구(神器), 도처에 신관(神宮)이 있고 신사(神社)가 있으며 하늘 천(天) 자(字)를 쓰되 중국은 천(天) 자(子)인데 비하여 일본은 천왕(天皇), 지상을 다스리기보다 하늘의 황제인 셈이다. 심지어 신자(神字)라는 말도 있는데 신대(神代)의 글자라는 뜻이겠다. 여기서 집고 넘어갈 일이 하나 있지만, 뭐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에도(江戶)시대 후기, 국학자 사대인(四大人)의 한사람으로 일컬어지는 히라타 아츠다네(平田篤)는 시인(詩人)이기도 한 사람인데 그 당시 일본 존중의 열풍이 대단했다. 그래 그랬겠지만 신대문자(神代文字)라고 그가 들고 나온 것이 놀랍게도 우리 한글과 흡사한 것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것이야말로 신대문자(神代文字)로서 한국에까지 전달되어 언문(諺文)이 되었노라, 배꼽 잡고 웃을 주장을 한 것이다. 그쪽 학자들도 지나치게 황당한 일이라 그랬을 테지만 부당한 설(說)이라 했고 도리어 신자(神字)는 언문의 와전이거나 혹은 언문에 시사를 받은 위작(僞作)일거라 하여 흐지부지되고 다시 거론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말에 관한 것도 한 가지, 메이지(明治) 말년에 가나자와 쇼자브로(金澤匠三郞)라는 학자가 일한양국어동계론(日韓兩國語同系論)이란 책을 내놨다. 그는 유구어(琉球語)와 일본어의 관계처럼 한국어도 일본어의 한 분파(分派)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변했던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다. 문화(文化)도 물과 같아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다. 언어 또한 문화의 산물인데 어찌 역류(逆流)가 있을 수 있겠는가. 영역(英譯)까지 곁들여 책을 내놓은 가나자와(金澤)의 저의는 재론의 여지도 없이 세계(世界)를 향한 선전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을 꼴볼견으로 만든 사람이 가나자와(金澤) 혼자뿐일까 마는 그동안 세계에서 우리의 위상(位相)이 어떠했던가 한 번 돌아보자. 전갈의 독즙(毒汁)과도 같이 일본(日本)이 뿌려놓은 미개(未開)의 민족이다. 자립할 능력이 없는 민족이다. 옛날에는 우리의 속국이었고 후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다. 항변할 길조차 없이 일세기(一世紀)에 가까운 세월을 업신여김과 소외를 견디고 1차대전(一次大戰)후 민족의 자결권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며 우리는 역사(歷史)의 뒤안길을 걸어왔다.
 새삼스런 얘기, 그야말로 지겹게 새삼스런 얘기지만. 과거 일본의 역사학(歷史學), 특히 국사학의 학자들은 황국사관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역사(歷史)에 무수히 많은 땜질을 했고 또 많이 쏠아내고 했으며 한일 합방(合邦)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도 다 아는 일이거니와 그러나 안다는 그 자체는 무의미한 일이었다. 사실이 이렇고 저렇고 해봐야 소용이 없고 학자의 양심 운운했다가는 바보가 된다. 쏠아내고 땜질하고 그 자체가 일본학자 그들에게는 진리(眞理)요 진실(眞實)이요 바로 그것이 지고선(至高善)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고(思考)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長久)하게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細技)가 우수하면서도 일본(日本)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 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萎縮)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교과서(歷史敎科書)는 여전히 피해 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가늘은 시내물처럼 이어져온 일본(日本)의 맑은 줄기, 선병질적이리 만큼 맑은 양심의 인사(人士), 학자(學者)들이 소리를 내어보지만 날이 갈수록 작아지는 목소리, 반대로 높아져가고 있는 우익(右翼)의 고함은 우리의 근심이며 공포다. 일본(日本)의 장래를 위해서도 비극이다. 아닌 것을 그렇다 하고 분명한 것을 아니라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다. 그 무서운 것이 차츰 부풀어 거대(巨大)해질 때 우리가, 인류가, 누구보다 일본인(日本人) 자신이 환란을 겪게 될 것이다.
 씨가 마르게 사내들이 죽어간 2차대전(二次大戰), 일본의 악몽은 사람이 현인신(現人神)으로 존재하는 거짓의 그 황도주의 때문이다. 가타비라(한 겹의 일본 옷, 유자(惟子))같이 속이 비어있는 신국(神國)사상에 매달려온 일본인의 역사의식 그것의 극복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자유롭게 사고(思考)하는 사람으로, 야심 없는 이웃으로 마주보기 위하여,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일본인들 사상의 원형(原型)과 그 근거를 한자(漢字)가 일본으로 건너간 시대적 배경에 두어보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본글자 히라가나(平假名)와 가타가나(片假名)는 헤이안 시대(平安朝) 초기, 한문(漢文)에 토를 달기 위해 만들어진거니까 최초의 문자는 한자(漢字)인데 우리나라의 사정은 일본과 다르다.
 우리 민족이 한자(漢字)를 만들었다는 설(說)을 일소(一笑)에 붙인다 하더라도 뜻글, 다시 말하면 자연(自然)의 모방으로부터 시작된 글자는 샤머니즘과 결코 무관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 어떤 연대성을 느끼게 되고 어느 편에서, 누가 그것을 만들었던 간에, 또 한자(漢字)의 성격상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민족은 그 같은 과정과 더불어 있어 왔다는 점에서, 그 과정을 통하여 서서히 익숙해졌고 글자가 비록 지배층이나 특수층의 전용물이었다 하더라도 절도 있게 쓰여졌다는 점에서 일본과는 다르다.
 외래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정지(整地)가 미비(未備)했던 당시의 일본이 완성된 한자(漢字)와 낯설게, 그리고 갑자기 마주했을 때 그 대응이 무절제하고 희화적 형태로 나타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궤도(軌道) 수정을 수없이 해야 하는 역사(歷史)의 시간 속에서 섬이라는 국토의 특수성도 있었겠지만 궤도(軌道)의 수정 없이 사다리꼴로 현재까지 진행(進行)된 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스사노오(素盞鳴)가 아들과 함께 한일 간을 내왕하며 한서(漢書)를 가져왔느니, 임나(任那)의 소나갈질(蘇那曷叱)이, 또는 귀화한 신라의 왕자 아마노히호고(天日槍)가 가져왔느니, 그런 말들이 쓰여져 있는 모양인데 15대 왕 응신(應神) 때 백제의 아직기(阿直岐)가 처음 경전을 가져간 것이 정설(定說)이고 그 후 왕인(王仁)이 논어와 천자문을 가져가서 응신(應身)의 아들 우지노와끼이라쯔꼬를 가르쳤다 한다. 그러나 문자(文字)는 보급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30대왕 비타츠(敏達) 때, 고구려에서 보내오는 문서를 해독하는 사람은 오로지 왕진이(王辰爾) 한사람뿐이었다는 것이며 40대왕 덴무(天武)에 이르러 비로소 고사기(古事記)를 쓰기 시작하여 43대왕 겐메이(元明) 무렵 완성했다는 기록이다. 대체로 이 무렵 한자(漢字)가 정착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러나 앞서 말한바와 같이 한자(漢字) 구사가 허황하고, 물론 후세의 수정 가필(加筆)도 충분히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이지만 예(例)를 하나 들어보면 아마테라스(天照)의 5대 손(孫)인 고왕진무(姑王神武)의 부친 이름이 히꼬나기사다케우가야후키아에즈노미코도(彦波激武OO草葺不合尊), 이 한없이 긴 이름은 마치 난장이가 땅이 꺼지게 큰 투구를 쓰고 시합하는 것 같아 다소는 익살스럽고 기이한 느낌이다. 본시 이름이 그렇게 길었는지 실재(實在) 인물인지 의심스러우나 음(音)에다가 뜻 없이 한자를 끼워 맞춘 본보기는 될 것이다. 하필이면 왜 그런 것을 예로 들었는가, 비웃기나 하자고 한 짓은 결코 아니다. 그 이름에서 오늘의 일본인 모습과 의식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히라다 아츠타네(平田篤胤)와 가나자와 쇼자브로(金澤庄三郞), 한사람은 국학(國學)의 대가(大家)요 다른 한사람은 대학의 교수로서 이른바 지성(知性)의 정상적 인물임에도 우리는 그들 모습에서 허황함과 왜말로 곡케이(滑稽)를 느끼기 때문이다. 한자(漢字)의 경우뿐만 아니라 이야기(神話)의 내용도 그렇다. 몸통에 비하여 투구가 크다는 점에서 같다.
 일본신도(日本神道)의 한 분파(分派)에서는 일본을 만국의 종주국(宗主國)이라 했고 후지산(富士山)은 지구(地球)의 진수(鎭守)라는 과대망상, 그런 망상은 후일 세계(世界) 정복을 꿈꾸는 망상으로 발전했고 황도사상의 골수라 할 수 있는 신대편(神代篇)에는 도처에 그 모순이 노정되어 있다. 국토의 기원(起源)과 황실의 유래(由來), 민족(民族)의 내력 등의 기록이지만 소재는 그 당시의 사람(神)과 사건, 사람이기 보다 신과 사람의 혼돈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유는 다까아마하라(高天原)에서 내려온 스사노오(素盞鳴)가 여러 가지 신으로서의 흔적을 남기지만 돌연 신라에 가서 선재(船材)를 구해온다는 기록이 나타남으로서  그가 인간임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예(例)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는 구전(口傳)이다. 그 구전은 태반이 이주자(移住者)가 지니고 온 것이 분명하다. 고사기(古事記)의 선록자(撰錄者)는 오오노야스마로(太安万侶)지만 암송자는 아례(阿禮) 라는 여자로, 다까아마하라(高天原)에서 내려온 아마노우즈메(天細女)의 후예라는 점에서 그것을 상상할 수 있다. 셋째는 한문(漢文)에 실리어 온 설화(說話)나 고사(古事)에 관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왕권확립을 위한 사업으로 도마에 올려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이 어떻게 요리되었는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천무왕(天武王)은 애초부터 구기(舊記)의 삭정(削定)을 의도하여 시작한 일이었고 말로는 제가(諸家)에 전해지는 구기(舊記, 구전(口傳)인 듯 싶다)에 허위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반대였을 것이다.
 왕권 확립을 위하여 왕실 미화는 필수조건이며 따라서 날조와 삭제 표절은 불가피한 일이다. 신화(神話)란 어느 곳에서든 세월 따라서 삭제되고 날조하고 표절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해서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은 이야기는 거짓말이요 노래는 참말이라 했던 것이다. 어떤 민족이든 그 기원(起源)에 신화(神話) 없는 민족은 없다.
 우리에게도 난생설화(卵生說話)가 있고 천지(天池)를 돌바늘로 기웠다는 전설이 있지만 초인적(超人的) 초자연적(超自然的) 이야기를 믿고 나라의 기틀로 삼는 일은 오늘날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신대편(神代篇)의 현란한 드라마는 다음 회(回)로 넘긴다.

     관련기사
· 원고지 148매…증오의 근원 등 6편
원주투데이의 다른기사 보기  
ⓒ 원주투데이(http://news1042.ndsoft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기획특집: 시민의 발 시내버스, 인구
사건사고 브리핑
귀래 사랑의집 48년 악연 끊었다
4월 원주지역 아파트 매매 실거래가
제16회 장미축제…축하공연·체험행사
행구동 아파트 거래현황…현대아파트 3
제11회 청소년축제 성황
원주천에서 수달 서식 목격
(주)인성메디칼 원주 이전 지역주민
원주문화재단,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강원도 원주시 서원대로 158 5층(단계동)  |  대표이사 오원집  |  Tel : 033)744-7114 / Fax : 033)747-9914
발행인: 심형규  |  편집인: 오원집  |  등록년월일: 2012년 4월 9일  |  등록번호: 강원 아 00125  |  사업자등록번호: 224-81-11892
Copyright 2009 원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jtoday1@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