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는 30만 인구의 도시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하면 아담하고 작은 소도시지만 시골에서는 한 달만 지나면 모르는 사람이 없잖은가?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모두가 내 삶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소한 모든 일이 다 관심거리다.

30만 도시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깊은 밤에 어느 집에서 아우성에, 비명에, 날카로운 소리가 쨍쨍거려도 무덤덤하게 '그럴 일이 있는가보다' 하고 만다.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도시의 삶은 왜 그렇게 무심할까? 한 마디로 말해서 귀찮다는 것 아닌가?

예전에는 약속을 정할 때 "해질녘에 한 잔 할까?" "그려, 있다 봄세" 이런 약속들을 하고 살았다. 요즘에는 5분만 늦어도 대단한 실례가 아닌가? 먹고 사는 것이 각박하여 바쁘게 뛰어야 한다. 택시를 타고 가다 길이 막히면 미터기에서 '딸깍' '딸깍' 돈 올라가는 소리에 얼마나 예민한가? 이때 누가 운전 부주위로 잠시만 앞에서 걸리적거리면 잡아먹을 듯이 사납게 짖어대지 않는가?

이렇게 바쁘고 각박하게 남의 시간 빼앗지 않으며 살아야 하니 내게 절실하지 않은 것이 다 귀찮은 것이 도시의 삶이다. 이렇게 바쁘고 여유없게 살면 우리 영혼은 얼마나 피곤한가? 몸이 피곤하면 쉬면 되지만 마음이 피곤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열 받아 죽겠다'고 한다.

깊은 바다에 물고기들이 사는 것을 보면, 상어 같은 큰 놈들은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데 작은 물고기들은 대체로 떼를 지어 몰려다닌다. 몰려 있으면 거대한 개체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럴 거다. 금수의 왕이라는 호랑이도 단독 생활을 하는데 작은 짐승들은 역시 집단생활을 하면서 각자 맡은 직분을 책임진다.

사람도 그와 같아서 신경림 시인은 파장(罷場)이라는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했지. 이른바 '못난 놈들'이 사는 모습들을 보자. 조상이 같다고 모이고(종친회), 군대생활 같이 했다고 모이고(전우회), 고향이 같다고 모이고(향우회),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고 모이고(동문회), 취미가 같다고 모이고(동호회). 그 밖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모임을 만들어 즐기고 있는가? 허나 영혼의 거인이신 법정 스님은 속세가 번잡스러워 산속에 홀로 계시며 얼마나 편하고 자연스럽게 사시는가? 소인배들은 산속에 일주일만 홀로 떼어 놓으면 외롭네, 무섭네, 심심하네 등등 몸이 비비 꼬일 것이다.

공자님의 '등동산이 소노국, 등동산이 소천하(登東山이 小魯國, 登東山이 小天國)'하는 경지를 어찌 알까? 기껏해야 10층 옥상에 올라가서 세상이 넓다고 하는 꼴이겠지. 그나마 같은 책을 함께 읽는 것이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면서 죽어도 못 떼어 놓는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질긴 인연의 끈이 닿지 않더라도 30만 원주 시민을 정서적으로 묶어주는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은 독서의 대중화를 위해서라면 의미 있는 일이다.

김성한의 '바비도'에서 바비도를 비롯한 비밀독서회 회원들처럼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낸다든지, 1985년 '참말'에 굶주렸던 우리들에게 '말誌'처럼 속을 후련하게 해주는 즐거움을 공유할 수 없을까? 그래서 '30만 원주시민을 동지로 엮어 주는 책이 있다면' 하는 잠꼬대 같은 꿈을 꾼다.

배려, 초정리 편지, 숨쉬는 도시 꾸리찌바를 읽는 것은 아닐지라도 '어! 저 책 나도 읽었어' 하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반가움과 정겨움에 용기를 내어 미소짓는 마음들이 소리없이 모여서 300,000/1 +알파=정겨운 '우리원주'로 엮어주는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생각하며 첫 고개를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