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부터 4개월간 한국이 낳은 대문호 박경리 선생의 옛집에서 열린 토지학교가 지난달 8일 7강을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토지문학공원과 원주투데이신문사가 주최하고 교육문화워커즈 멋살림이 주관한 토지학교는 문학강연회 형식으로 운영됐지만 "살아 숨 쉬는 토지를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토지학교 수강생들은 지난달 16, 17일 1박2일간 소설 토지의 무대 하동에 다녀왔습니다. 소설 토지가 쓰여진 원주의 시민들이 소설 토지가 시작된 하동에서 얻은 느낌을 지난호에 이어 고창영 토지학교 교장의 글을 통해 전해 드립니다.

　화계로 들어가면서 일행은 하동군에서 운영하는 다원에 들렸다. 직접 이 곳에서 나는 어린 차 잎을 덖어보기도 하고, 비벼보기도 하면서 차가 만들어지는 과장을 체험해 보고, 또 왕에게 올렸다는 하동의 그윽한 차 맛에 듬뿍 빠지며 다도를 체험하며 몸속을 맑은 녹차로 씻어 낸 후 쌍계사로 향했다.
　해가 어스름하게 지는 시간이어서 일까? 몇 번을 와 봤어도 이런 감동은 처음이었다. 쌍계사로 올라 가는 길은 내 심연의 길을 따라 올라 가는 길만 같았다.
　소설 토지 속에서는 혜관이 쌍계사 스님으로 등장한다. 토지에서 쌍계사는 만주로 가는 행선지나 소문을 듣는 곳 등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화해의 공간이기도 하다.
　실제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대비, 삼법 두 화상께서 선종의 육조이신 혜능 스님의 정상을 보시고 귀국 "지리산 눈 쌓인 계곡 칡꽃이 피어있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은 것이 유래가 됐다고 하고,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고산 스님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때마침 소설 토지학교 일행이 도착했을 때 쌍계사에서는 저녁 예불 전 법고를 치는 스님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절도 있고 힘 있는 스님들의 북을 두드리는 손길을 따라 낮과 어둠이 만나는 어스름한 쌍계사 주변은 장엄하다 못해 숙연해졌고 종교를 따지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두 손을 모으고 끝까지 스님들의 법고 울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녁은 하동의 특별한 맛인 참게탕 이었다. 지역의 특산물인 죽순이며 산나물, 특히 매실을 고추장에 양념한 장아찌는 뚝딱 한 그릇 밥을 비워내고도 남았다.
　넉넉한 하동의 인심을 먹고 마시고 일행은 숙소로 마련한 최참판댁으로 옮겼다. 이곳은 이렇게 숙박을 하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 토지를 공부하고 방문하는 일행을 위해 기꺼이 14칸의 방을 내어 주셨고, 우리 일행은 윤씨부인의 안채, 별당아씨가 묵었을 별당, 최치수가 묵었을 사랑채 등등 각각 방을 잡고 참으로 행복한 꿈길을 걸을 수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자는 취지대로 밤에는 모두 사랑채에 모여 이상진 교수로부터 '토지'의 평사리 지역 형상화와 서사적 의미란 주제의 강의를 듣고 밤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소설 토지 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적당히 투둑굠 빗방울이 떨어져 줬고 추녀 끝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황홀하게 바라보았다.
　오늘 밤, 내 손을 잡아 끄는 구천이가 온다면 "그래, 인생 뭐 있어. 사랑하는 사람과 있어야지, 확~ 따라 갈꺼나…" 했더니 일동 웃음 바다를 이룬다(하지만 날이 밝아오도록 구천인 오지 않았다…).
　다음날 최 참판댁에서 맞이한 장엄한 아침 풍경은 지금도 가슴을 꽉 잡고 놓질 못한다. 사랑채 루에 올라 내려다본 평사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저렇게 넓은 평야는 처음 봤지 싶을 드 넓은 평야와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섬진강 물줄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는 지리산 산자락~
　일행은 고소성에 올라 또 한번 감탄과 감격의 시간을 갖고 다시 내려와 아침으로 재첩국을 먹었다. 일부러 우리 일행을 위해 특별히 양식이 아닌 자연산 재첩을 구해와 준비했다는 이장님의 말씀처럼 동네 분들이 마련해준 음식은 집에서 먹는 그 이상의 시골 인심 그대로였다.
　새벽부터 분주히 나와 길안내를 맡아주는 하동군청 직원들의 안내로 섬진강으로 향했다. 맨발로 섬진강 모래 위를 걸으며 섬진강에 몸을 던진 아름다운 기생 기화를 떠올렸고, 섬진강 강가에서 기묘한 해후를 갖은 양현과 영광을 생각했고, 숙이와 윤국이, 그리고 아비에게 버림을 받은 후 몇 번인가 섬진강에 몸을 던졌던 한복이가 느껴졌다.
　하동송림과 하동포구, 화계장터까지 두루두루 둘러본 이번 소설 토지 속 배경 답사는 소설 토지의 현장을 방문하는 기쁜 충족감을 주었고, 이 작품이 원주에서 쓰여지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는 사실이 대단한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끝까지 친절하게 길잡이 노릇을 해주신 하동군 분들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일행은 원주로 향했다. 소설 토지의 무대가 되는 하동을 만나고 고향 원주를 향해 돌아오는 길, 함께 이번 답사를 했던 우리는 마음속에 글자 하나 세겨 넣기로 했다.
　"우리의 자랑이 토지문학공원이듯 토지문학공원의 자랑은 바로 우리여라"
　원주는 근대문학 100년사의 최고 작품이 쓰여진 한국문학의 산실 토지문학공원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큰 지역의 문화적 자산인가? 앞으로 원주시민의 자랑이 토지문학공원이 되길, 그리고 토지문학공원의 자랑이 원주시민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끝으로 원주시 토지문학공원에서 주최한 소설 토지학교 1기가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도록 열강을 해 주신 교수님들과 늦은 저녁 부지런히 달려와 반짝이는 눈으로 공부에 임하던 우리 학생들, 원만한 하동 답사가 되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던 하동군, 매주 지면을 통해 소설 토지의 참 맛을 지상강연을 통해 알려주셨던 원주투데이, 먼 거리까지 함께 동행 취재하며 소설 토지학교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준 원주MBC, 그리고 섬세한 기획력과 야무진 손끝으로 함께한 멋살림 식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 토지문학공원은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쓰여진 산실로써 소설 토지
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관심 많은 우리 시민들이 즐거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의 장을 넓혀 나가 원주가 토지의 뿌리요 중심이 되도록 행복한 작업을 계속 하려고 한다.
　고창영(토지학교 교장ㆍ토지문학공원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