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강의에 열중해 있는 참가자들.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주인공이라 말하는 최서희에서부터 악인의 전형인 김두수까지 누구 하나 명확하게 선악의 이분법으로 포섭하기 어렵다. 이는 '토지'의 핵심 주제가 '도덕'의 문제임을 암시한다. '토지'의 인물 분석을 통해 도덕의 본질이 자유와 존엄성에 있음을 이해하고, 나아가 서사물을 통한 도덕적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 본다.

　1. 도덕이란 무엇인가?
　도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을 꾸짖을 때에 '부도덕하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부도덕하다는 비난은 상대방에게 신체적, 물질적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사람들은 대개 그런 소리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소위 '양심'이 있는 사람은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듣고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를 반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대개의 경우는 어떤 식으로든 변명을 하고,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반성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으니 용서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다시 화를 내면서 이 둘의 관계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아주 간단한 위의 예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대개의 사람들이 도덕적인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부도덕한 것을   '좋지 않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라는 표현에는 '진귀한 것' '값진 것' 등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우리는 특별히 '선(善)'이라고 하며, 그 반대를 '악(惡)'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불분명한 것은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의 정확한 기준이다. 나아가 '도덕'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몇 해 전에 있었던 '개똥녀 사건'을 떠올려 보자. 처음에 사람들은 애완견이 싼 똥을 치우지 않고 전철에서 그냥 내린 여성의 부도덕함에 분노했다. 하지만 여성의 신상이 공개되고, 그녀의 인터넷 홈페이지가 분노한 네티즌들의 악의적 글로 가득차게 되자, 여론의 방향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네티즌들 중 일부가 마녀사냥식의 위험한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화제가 된 몇 몇 연예인들의 자살 동기에서도 네티즌들의 '악플'은 계속 도마에 올랐다.
　이 이야기는 도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암시해 준다. 애완견이 싼 똥을 치우지 않은 '여성'의 행위도 부도덕하지만, 그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도덕적이지 않다는 우리 사회의 합의이다. 먼저 앞 문장의 마지막 어절에 나온 '합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도덕의 절대적 기준을 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도덕은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해왔고, 같은 시대라 하더라도 서로 다른 문화적 관습에 있는 사람들 간에 상당한 편차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구체적 행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어느 정도의 '합의'가 가능하다. 나아가 이는 도덕의 문제가 형이상학적이거나 존재론적인 탐구의 대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도덕 서사를 통해 사안별로 판단하고 숙고하는 것이 더 유의미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문학 작품을 통해 도덕의 문제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논의를 '개똥녀'와 그녀를 비난한    '네티즌'으로 돌려보자. 애완견이 공공장소에서 끼친 폐해를 원상태로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도덕 규정은 물론 없지만, 우리는 구체적 사건을 통해 그녀의 행위가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그녀를 '악녀'로 규정할 수는 없다. '악하다'라는 판단을 그처럼 우발적이고 일회적인 에피소드에만 의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네티즌들은 그녀를 '악녀'로 규정하고, 그녀를 '단죄'하기 위해 온갖 원색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단죄한 네티즌 중에는 '그녀'보다 더 '악한'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죄 없는 사람들만이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는 그녀를 단죄한 네티즌들이 자신에게 숨겨진 '악한 그림자'를 두려워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개 선한 표상을 얻고자 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많은 악행을 저질렀다. 동생에게 이유없이 화를 냈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했고, 심지어 친한 친구가 아끼던 물건을 망가뜨리고는 시치미를 떼기도 했다. 이렇게 선하고 악한 모습들이 뒤섞인 우리가 누군가의 명백한 악행을 강하게 비난하는 이면에는 자신을 선한 존재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구가 분명히 숨어있다. 나아가 이러한 욕구 속에는 자신도 그런 악한 존재로 추락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도 얼마든지 부도덕해질 수 있다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며 당황해하는 것이다.
　조금 에둘러 왔지만, 이제 이야기의 결론을 내릴 수가 있다.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의 경계를 명확하게 가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경계를 탐구하고 사색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의 방법에는 도덕의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분석도 필요하겠지만, 구체적이고 서사적인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단하는 소설 속 인물들을 찬찬히 음미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방법이다.

　2. '토지'의 인물과 도덕의 문제
　도덕의 차원에서 볼 때 작품에서 가장 문제적인 인물은 김개주이다. 그는 동학의 접주라는 혁명운동의 지도자로서 누구보다 강직한 도덕적 품성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오히려 남편의 넋을 추모하며 불공을 드리던 젊은 과부를 겁탈했다. 앞에서 보았던 '개똥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악행이다. 하지만 작품은 김개주의 그러한 악행은 전언으로만 소개될 뿐 구체적으로 서사화되지 않았다. 작중 인물들을 통해 회상되는 김개주의 구체적 형상은 매우 인간적이고 긍정적이다. 그뿐 아니라 김개주의 악한 행위의 결과로 태어난 김환은 별당아씨와 야반도주를 함으로써 이후 최참판가와 평사리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근본적 원인 제공자가 된다. 하지만 김환과 별당아씨에 대해서는 작품은 우호적이고 낭만적으로 태도로 일관한다.
　이처럼 '토지'에 나타난 도덕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개주와 김환으로 이어지는 두 인물의 악한 행위와 이에 대한 작가의 우호적 태도가 보여주는 모순과 긴장에 대해 논해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작가는 이처럼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복합적 인물들을 통해  선과 악의 이분법을 해체시키면서 도덕의 본질에 대한 심원한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토지'가 보여주는 이러한 관점은 서희와 길상, 오가다 지로와 유인실, 나아가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이라는 국가 단위로까지 그대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