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가 진행되는 박경리 선생 옛집 2층 사랑방은 원주시민들의 토지사랑으로 채워진다.

애정 갈등관계에만 촛점…인물 표현 왜곡

의도적으로 숨긴 부분 드러내 묘미 사라져

　1. 중층적 서사미학
　'토지'는 탄생의 비밀, 성장, 욕망, 싸움(해방), 죽음. 이 다섯 모티프의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성장 모티프와 싸움(해방)의 모티프들이 다른 모티프들에 비해서 적고 그 양상도 중심 서사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정태적 모티프로 작용한다. 이에 반해 탄생의 비밀 모티프와 욕망, 죽음의 모티프들은 역동적 모티프로 작용한다. 탄생의 비밀 모티프는 작가의 운명론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죽음의 모티프들에서는 비극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각 부별로 보면 1, 2부에서 개개 모티프들이 중심 서사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비해 후반부로 가면서 이들 모티프들이 산발적으로 된다.
　서사구성 면에서 '토지'는 중층적 플롯의 양상을 보인다. 서희를 중심으로 하는 최씨가 가족사와 평사리, 간도, 서울, 진주 등의 공간에 근거를 둔 인물들의 집단사의 교차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4부 이후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와 이야기의 분리가 심화된다. 이러한 이중적인 구조는 '토지'의 시간관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역사적 시간이 긴데 반해, 인물들의 변화는 미약해서 인물의 시간과 역사적 시간의 거리가 뚜렷하다.
　
　2. 이원화된 서술 방식
　'토지'는 묘사와 사투리 구사가 탁월하다. 묘사와 서술 문장을 비교했을 때, 묘사문의 문장이 명료한 데 비해, 서술 문장은 산만한 경우가 많다. 이는 작가의 관조적 세계관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묘사는 공간 개념과 관조적 세계관을, 서술은 시간 개념과 행동적 세계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관조적 세계관이 서술방식에도 애정과 관심의 차이를 주게 돼 공간 묘사와 분위기 묘사에 치중하게 됐다.
　사투리를 구사하는 평민들의 담론에서는 여유가 있어 에돌아가는 맛이 있고, 양반들의 담론은 형상화보다는 추상적 대화나 연설이 주를 이룬다. 양반이나 식자층의 담론은 작가의 주관적 감정 투사가 심각하고 추상적 관념적이며, 사념의 토로와 장광설이 많다. 이렇게 확연히 구분되는 식자층과 평민의 구별은 작가가 작품을 쓰는 시간의 역사 상황의 알레고리로 읽힌다.
　소설 담론은 작가가 살고 있는 세계와 작가가 가진 세계관, 그리고 작품 속의 역사가 대화하는 것이기에, 억압과 해방이라는 식민지 현실의 이중 구조와 작가의 집필 당대의 흑백 논리가 작품 속에 투영된 것이다.
　'토지'가 대상으로 하는 시기, 조선말과 일제하가 해방과 억압의 시기라면, 집필 시기인 69년에서 94년까지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적 사고가 횡행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3. 소설에서 숨은 이야기
　'토지'의 이야기 방식 중 중요한 것은 소거와 생략, 반복이다. 주요 사건을 서술의 전면에 나타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지워버리거나 과거의 일을 본인이나 다른 사람의 회상을 통해 반복하는 방식이다. 주요 사건이 많은 1, 2 부에서는 소거와 생략이, 사건이 적은 4, 5부에서는 반복의 방식이 동원된다.
　소설 '토지'에서 중심 서사는 독자를 당황하게 만들 정도로 비워지고 지워지는 부분이 많다. 작가는 '토지'에서 일부러 어떤 인물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배제했다고 말한다. 특히 최씨가 불륜의 네 사람(윤씨 부인, 김개주, 별당아씨, 구천) 중 김개주와 별당아씨를 실제 서사에서 일부러 제거한 것은 소설의 입체감을 위한 배려였다고 작가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네 사람들(김개주, 윤씨부인, 구천, 별당아씨) 다 안개 속에 보내 버리면 소설은 평이해지고 네 사람을 다 정면에 내세워도 평이해지는 것입니다.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것으로, 또 가로누운 것, 세운 것이 있어야 집이 되듯, 짜임새라 할까요?
　또 하나, 그들 두 사람을 감추어 버린 이유는 진실 자체가 은밀하며 꺼내 보일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독자들 각기의 상상에다 넘기려는, 말하자면 신비의 베일을 씌운 것입니다."
　(박경리,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  게', 현대문학, 1995, 285굜286쪽)
　결국, 소설에서는 작가가 이야기를 드러내거나 숨겨서 이야기의 묘미를 살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묘미가 드라마에서는 사라지게 된다.
　
　4. 드라마의 보여주기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구천과 별당아씨의 애정 표현, 길상과 서희의 마차 전복 사건, 길상의 체포 장면, 봉순의 자살 장면 등의 숨겨진 주요 서사가 직접적으로 장면화된다. 소설에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비워버린 서사의 복원을 위해 대화를 통한 전언과 서술자의 요약 등에서 전달되는 사건까지 장면화한다.
　인물 또한 드라마에서는 극적 구성과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멜로드라마적 특성이 부각됨으로써 인물들의 표현이 극단화되거나 왜곡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드라마 1부는 서희 일가를 중심으로 초점화되고 있다. 이야기의 기본 토대인 최서희를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집중 전개된다. 텔레비전 수용층인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가족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토지' 1부 서사를 최참판가 구성원 개개인들을 초점화했다.
　드라마에서 갈등 구도를 명확히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의 설정을 분석해보면 최씨가를 중심으로 하는 갈등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소설 '토지'가 비록 최씨가의 몰락과 재건을 기본축으로 하고 있지만 한 가족이나 몇 가족의 이야기로만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당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생활상이 다양하게 펼쳐지며, 이는 생활상뿐 아니라 주제의식 면에서도 드러나 있다.
　
　5. 소설의 관념 형성과 드라마의 관념 보여주기
　한ㆍ운명ㆍ허무ㆍ토지ㆍ민족ㆍ생명ㆍ동학 등이 '토지'의 주요 테마라면, 이런 테마가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1, 2 부에서 최씨가를 포함한 인물들의 형상화는 내면의식과 타자의 갈등이 긴장감을 주는 반면, 3부 이후 지식인 인물의 내면은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그래서 '토지'의 4부와 5부의 성격은 관념소설에 가깝다.
　4부에서 독립 운동을 위해 지리산으로 들어온 많은 지식인 그룹이 설정되는데, 드라마에서는 이 부분이 사라져버렸다. 관념 소설의 형태를 가질 만큼 관념이나 주제의식이 중요하게 서술되는 부분에서 관념과 사상은 사장되고 숨은 애정 서사를 끼워 맞춰 멜로적 속성만 강화했다. 소설의 멜로드라마적 속성이 각색 과정을 통해서 강화됨으로써, 관념과 사상은 사장되어버렸다. 그러므로 '토지'의 멜로 드라마적인 속성만을 이야기의 중심 구도로 내세워 애정 갈등 관계만을 초점화한 것은 드라마의 한계로 지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