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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강 - '토지'에 나타난 결혼의 양상과 의미 |
| 모순된 제도 자유의지와 충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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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릫토지학교릮 2강은 옛집 1층에서 진행됐다. 세대차를 넘어선 수강생들의 열기가 뜨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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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아 교수(건국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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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5대에 걸친 가족사가 흐르고 있는 대하소설이다. 등장인물의 가족 관계는 결혼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이 결혼과 관련된 갈등과 화합은 많은 사건의 도화선이 되며 결혼 그 자체가 사건이 되기도 한다. '토지'의 시대적 배경이 구한말에서 8.15해방까지인 만큼 전통적인 제도와 관습에 신문물ㆍ신문화가 들어와 혼재되어 있던 시기의 결혼의 다양한 양태를 '토지'는 보여준다. 또한 모순된 제도ㆍ관습과 인간의 본능ㆍ자유의지가 충돌할 수 있음을 '토지'의 '결혼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조선조 결혼제도는 신분차별과 남녀차별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불합리한 제도였다. 무엇보다도 양반, 중인, 양인, 천민 각각의 계급내혼을 원칙으로 했으며 양반끼리의 계급내혼만 예를 갖춘 사례혼사로 치룰 수 있었다. 하지만 국법으로 엄금하고 있다고 해도 관례적으로 계급외혼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더군다나 노비를 소유한 양반 계급에 의해 양천교혼이 조장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집안의 노비끼리 혼인하는 일은 양반에게 수지맞은 일이 아니어서 환영받지 못했으며, 심지어 주인 허락 없는 노비들 간의 성관계는 금물이었다.
노비와는 달리 천민 혹은 양인끼리의 계급내혼은 주체적으로 혼인을 성사시킬 수 있는 자유가 있기도 했다. 세종은 당시 천민을 양인과 화해시키려는 정책을 펴면서 이들의 계급내 통혼을 금하기도 했으나 천민에 대한 멸시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으며 천민끼리의 통혼은 계속됐다. 또한 갑오경장 당시 사회신분제의 법제적인 폐지가 이루어졌으나 수백 년간 사회구성의 골격을 이루었던 신분제가 단시일 내에 철폐될 수는 없었다. 사회통념상, 관습상의 신분제를 철저히 부정하고 극복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토지'에서 농민 출신 용이는 천민 무당의 딸 월선을 사랑하면서도 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쳐 월선과 결혼을 하지 못하고 평생 한을 품은 채 살아간다. 무당은 천민 중에서도 양반의 종첩조차 될 수 없는 특수한 계층이었다. 월선은 천민이면서 특히 무당의 딸이었기 때문에 신분의 벽을 넘기 힘들었다. 무당의 딸과 결혼하면 망한다는 잘못된 의식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토지'에서 월선과 용이는 네 차례의 생이별을 겪으면서도 더욱더 애틋하게 사랑을 하고 그 누구보다도 자비와 사랑을 베푼 상생의 정신을 보여준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토지'는 천민과 양인의 결혼을 성사시키기도 한다. 상인출신인 송관수는 동학운동을 하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떠돌다가 은신처에서 만난 백정의 딸과 결혼한다. 송관수는 형평사 운동, 의병활동, 노동자 파업, 만주 독립운동 가담 등 일생을 떠돌며 사회운동을 펼침으로써 신분으로 인해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에 부딪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그들이 백정임을 모르는 곳으로 아들을 보내고, 그 아들이 백정의 자손임이 밝혀져 실연을 겪고 방황하자 괴로워한다. 송관수의 아내 영광네는 아들과 사귀던 강혜숙의 어머니가 찾아와 행패를 부려도 스스로를 죄인이라 생각하고 울며 사죄한다. 영광의 동생 영선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머니를 말리며 "옴마 죄도 아니고 오래비 죄도 아니고 세상이 잘못된 죄"라고 말하지만. 1930년에 일어난 이 일은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다고는 하나 마음속에 찍혀 있는 피차간의 숱한 낙인들이 일조일석에 없어질 것인가" 라는 한탄조의 서술로 당시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인이 천민과 결혼하는 것은 낙혼에 속하는 것인데, '토지'에서 가장 획기적인 낙혼은 서희와 길상의 결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대지주 최참판가의 자손 서희가 근본도 모르고 머슴처럼 지내던 길상과 결혼을 한 것은 서희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는데, 이러한 서희의 선택은 설사 서희가 제도의 악습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해도, 서희가 가문의 권위를 되찾으려는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결과라고 비난해도, 그 영향은 보이지 않게 악습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서희와 길상이 결혼한 지 10여 년이 지난 후 김훈장의 손녀와 농사꾼 용이의 아들 홍이의 혼담에 대해 동네 아낙네들은 최참판댁 아기씨도 하인하고 결혼했으니 안 될 얘기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남녀차별의식은 여성에게 불리한 악습과 폐해를 낳았다. 조선 중기 이후 '출가외인'이라는 의식이 강해져 외가를 멀리하게 했으며, 상속에 있어서도 차별을 두었고 여성들의 재혼을 금지하는 제도도 생겨났다. 여성과는 달리 남자의 경우는 처가 사망했거나 처가 칠거를 범했을 경우 처를 내쫓은 후 재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첩을 둘 수도 있었다.
'토지'에서 구천이와 도주한 별당아씨의 남편 최치수의 결혼이 처음부터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열세 살에 한살 위인 아내와 결혼한 치수는 "날비둘기겉이 의가" 좋았으나 십이 년을 살다가 혈육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아내가 죽은 후 불행이 시작된 것이다. 십여 세나 아래인 별당아씨와 재혼한 후 딸 서희를 두었지만 치수는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아내가 먼저 죽음으로써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치수 이외에도 김훈장, 서서방, 육손이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남편의 죽음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에 불과하다. '토지'에 유달리 미망인이 다수 등장한다는 지적은 여러 번 있어왔다. 윤씨부인을 비롯하여 봉순네, 복동네, 야무네, 석이네, 정호네, 옥이네, 그리고 과부로서 개가한 송관수의 어머니 등 '토지'에서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여인들의 비중은 상당하다. '토지'에서는 간혹 과부의 재가나 과부는 아니지만 여성의 재혼이 성사되기도 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양반 계층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며 주위 사람들의 비난도 있지만 어렵지 않게 일이 성사되고 있다. 아내와 사별한 푸건이 신랑이 과부와 재혼을 하며, 통영 어장에서 국밥집을 운영하는 모화는 이미 결혼하여 아이까지 있었음에도 총각 몽치와 함께 산다.
결혼제도의 모순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동학교도들이었다. 귀천의 등위가 없고 남녀가 평등하다는 절대 평등사상은 동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상이다. 결혼과 관련하여 해월 최시형은 중혼에 반대하고 과부재가를 금지한 것을 비판했다. 남성은 처첩을 두는 것을 당연시하면서도 여성은 청상과부가 돼도 개가하지 못하게 한 불평등제도를 없애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동학의 사상은 '토지'의 근간이 되고 있는 생명사상과도 관련이 깊은 것이어서 주목을 요한다.
'토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결혼의 많은 사례는 대부분 속칭 '불행한 결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토지'에서 결혼과 관련된 사건은 당시 결혼제도와 관습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토지'를 결혼의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불합리한 제도로 인한 인간의 고통, 인간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잘못된 관습과 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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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윤아 교수(건국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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