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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미국 청년의 죽음 앞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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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오종 한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필자는 한라대학교에서 2004학년도 1년간 연구년(통칭 안식년)을 얻어 시카고 대학교에서 재충전을 시작했다. 지난 유학생 시절에는 그러지 못했지만 지금은 좀 여유를 가지고 미국과 미국인들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원주투데이의 시평 칼럼니스트로서 이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때때로 전해드리고자 한다.
지난 4월 24일 미국의 주요 언론 매체들은 한 젊은 병사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팻 틸먼(Pat Tillman). 27세. 하루에도 수십 명의 미군이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니 어느 한 군인의 전사가 세인의 이목을 끌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많은 미국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이방인인 필자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포츠인 미식축구의 스타였다. 아리조나 주립대학 팀의 뛰어난 수비선수인 그는 학업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 평점 3.84로 3년 반 만에 대학을 조기 졸업한다. 아리조나 카디널즈라는 프로팀에 스카웃되어 선수 생활을 시작해서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는다. 마침내 향후 3년간 3천600만 달러(약 42억원)를 제공하겠다는 구단측 제의를 받게 된다. 그러다가 9.11 테러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남모르게 고민한다.
프로선수로 활약하기보다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테러의 근거를 발본색원하는 것이야말로 피 끓는 젊은이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숭고한 사명이라는 결론에 이르러 육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한다. (참고로 미국군대는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틸먼의 연봉은 우리 돈으로 2천만원 정도 되는 1만8천달러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결심이 알려지자 매스컴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인터뷰를 요청한다. 하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데 자신만이 유독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로 끝내 집요한 언론의 요청을 물리친다.
입대한 후에도, 특별히 힘들고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특공대 배속을 희망하여 혹독한 훈련을 거쳐 마침내 특공대원이 되어 중동으로 파견된다. 9.11 테러의 배후, 알 카에다와 탈리반 세력과 치열한 교전 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앞길에는 부와 명예와 대중의 환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라를 위해 스스로 아낌없이 그것들을 포기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일부 프로운동 선수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자신의 몸을 일부러 훼손하여 사법처리를 받게 되었다는 보도에 접한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대비가 될 수 있는가.
보장된 행복과 안전을 포기하고 애국 충정 때문에 어쩌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위험한 길에 들어서면서 한번쯤 매스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 자신의 의중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해서 결코 흉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청년은 이마저 깨끗이 물리쳤다. 지난 총선 때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위해 보기 민망한 모습을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과장하여 보여준 우리나라 일부 정치권 인사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팻 틸먼. 그는 비록 남의 나라 젊은이지만 진정한 애국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하는 것임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한 미국 청년의 의로운 죽음 앞에서 그동안 입으로만 애국해 온 사이비 애국자는 이제 입을 닫고 옷깃을 여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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