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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살결을 살려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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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세 현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교수
웬만하면 맨땅을 시멘트로 싸발라 버리는게 요즈막의
흐름이다. 크게 후회하고 두루 섭섭해 할 일들이다.
요즈음 나는 막 불사가 시작된 절집 하나를 만나 즐겁다.
원주에서 가까이 있고 절집으로 들어가는 계곡의 길이 너무 유혹적이어서 아끼는 장소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 절집이 내게 주는 매력은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하나는 완성된 가람이 아니라 이제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3㎞ 정도 펼쳐지는 절에 이르는 비포장의 길이다. 두 가지 다 나를 설레게 하는 일들이다.
좁은 계곡을 끼고 느릿느릿 이어지는 진입로는 참 예쁘다. 요즘 이런 길이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감출 길 없다. 이제는 비포장도로를 만나기 힘들다. 누구의 발상인지 웬만하면 맨땅을 시멘트로 싸발라버리는 게 요즈막의 흐름이다. 편리를 우선에 두는 사람들의 현실성을 나무라기만 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그 일은 크게 후회하고 두루 섭섭해 할 일들이다. 돌이켜 고쳐질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절집 진입로 포장 문제를 앞에 두고 주지스님도 고심하고 있었다.
사찰의 입장이란 절을 찾는 신도들의 편리를 따져보지 않을 수 없고, 다르게는 해마다 물피해로 감당해야하는 막대한 비용을 계산에 넣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찰측도 그래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데 아마도 포장쪽으로 기우는 듯 싶어 마음이 아리다. 웬만큼 이름을 얻은 여행지를 가보면 대개 비포장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다. 그 점은 나같은 여행자들을 섭섭하게 하고 다시는 그곳을 그리워하지 않게 만들기도 한다. 절집만해도 그렇다. 어디라 지적할 것도 없이 ‘절에 이르는 길’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아름답고 너그러운 과정이다. 그 길을 포장해버린다는 것은 누군가 그 길을 걸으며 자연과 허심하게 나눌 교감의 순간을 포장해버리는 씁쓸한 일이 아닌가 한다.
신림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길들과 금대리에서 영원사에 다다르는 길들이 그런대로 비포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가끔 내가 국립공원 안으로 가는 것은 날 것의 상태로 남아있는 길들을 쓰다듬고 걸어보고 싶은 욕구때문이다. 어느날 이 길들이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어 뒤척일 때도 있다. 요즘은 좋은 길을 소개해주는 사람이 고맙다. 여담이지만, 나도 몇 개의 공개할 수 없는 비포장의 매력적인 길들을 알고 있다. 누구에겐가 그 길을 권할 날이 있길 바라며.
금년도 미당문학상 수상자인 황동규 시인이 ‘몰운대행’에서 노래한 ‘가문비나무의 물결/사이사이로 비포장도로의 순살결./저 날것,/도는 군침!’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강원도 정선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만난 비포장도로를 ‘순살결’이라고 했다.
큰 시인다운 표현의 장관이다. 어쩌면 눈 앞에서 순살결 하나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 욕심같아선 내 것으로 사유화해서 밀봉해버리고 싶었던 그 좋은 길이 없어진다면 나같은 답답이들은 또 무슨 낙을 대신 삼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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