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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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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세 현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교수)
“우리 몸에서 시를 향한 갈망의 본심이
사라지면 어쩌면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위축되고 이의 한 여파로 혹은 다른 이유와 더불어 문학의 위상도 많이 격하되었다. 문학이 독서의 중심에서 변두리로 밀려날 때 그 중 앞자리는 시가 차지한다. 시는 언어의 한 절정이며 삶의 요체를 막바로 가리키는 문학의 기본 단위라는 점에서 인류의 보편적 사랑과 지지를 받아왔다.
그런데 시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많이 무너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시의 중심 독자층들이 시로부터 이반되고 있다. 이또한 시대적 흐름이라고 한다면 시의 생산을 담당하고 있는 시인들은 수용할 수밖에 없으리라.
흔히 문학생산과 유통에 관여하는 문학저널들의 편집방향을 보면 그들의 편집태도를 엿볼 수 있다. 과거 어떤 시기의 잡지들은 작품 게재를 할 때 시를 가장 앞자리에 전진 배치시켰다. 그만큼 시를 독자들 시선의 중심에 놓고 싶어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그만큼 시를 존중했다는 자의식의 표현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시를 가장 앞자리에 싣는 편집방식들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즉, 소설이나 비평이 시가 있던 자리를 밀어내고 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어느덧 그러한 게재상의 외형적 질서는 당연시되고 있다.
물론 이와같은 편집태도의 저변은 당연히 당대 독자들의 독서취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변될 것이다. 그래서 그 여파와 후유증으로 시는 독자들의 관심권 밖으로 추방된 것이 아닐까? 상대적으로 소설장르는 시의 위축과 달리 승승장구해 왔는가, 자문해 보아야 한다.
최근 어떤 잡지는 잡지의 적당한 구석에 배치해왔던 방식을 전면 취소하고 시를 잡지의 제일 앞자리로 배치시키기로 편집의 방향을 바꿨다. 신선하다. 당연했던 방식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져서이다.
독서대중들과 전문독자들에게 시의 위상과 품격을 재정립시키겠다는 편집자들의 의지이기도 하다. 이렇게해서라도 시의 자리가 되찾아지거나 새로워진다면 시 자신을 위해서나 시인들을 위해서도 멋진 일이다.
우리네 지하철역에 시가 전시되어 있는 걸 보러 오는 일본인들이 있다고 한다. 과거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국가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지하철역에 시를 내거는 여유와 풍류가 의아스럽기도 하고 부러워서라고 한다.
그러나 한번 게시된 시들이 바뀌지 않음에 다소 실망했다고 한다. 이런 에피소드가 아니라도 인간에겐 본원적으로 시에 대한 갈망이 있다. 마치 고향이나 연인을 그리워하는 설레임이 누구에게나 감춰져 있듯이. 우리들 가슴 안에 있는 샘물같은 시의 원천들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샘이 마르고 망가지면 인간의 갈증을 다스릴 기제들이 없어질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자리에서 시를 걱정하는 진정한 이유는 시를 위해서도 시인을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의 몸에서 시를 향한 갈망의 본심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쩌면 괴물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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