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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공원에서 안나푸르나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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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세 현(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교수)
소란과 잡답을 벗어나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밀어넣게 하는 안나푸르나를 꿈꿔봅시다.
며칠 전에 단계택지 안에 있는 장미공원을 몇 걸음 걸었다.
장미 감상에는 서툴지만 그들이 뿜어놓은 색상만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꽃구경이란 얼마나 한가로운 것인가 하는 반성이 들었지만 돌아보니 바쁠 게 없는 게 또한 삶의 내용이라는 생각이 왔다.
어떻게 보면 요즘 사람들의 일상이 분주한 것으로 이해되지만, 실상을 분석해보면 그렇지도 않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쓸데없는 일들을 진지한 형식에 담아 고심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더불어 왔다. 장미공원에서 잠시만에 얻은 깨달음이다. 한편에선 16강이다, 선거다 웅웅대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공연히 사람의 혼을 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왔다.
믿었던 신념들은 붕괴되거나 소진되고, 대안은 없고, 그래도 이것뿐이라는 외마디 독선들만이 외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이 경영의 대상이 되고, 이른바 히딩크같은 CEO들에게 접수되고, 존경의 대상들은 침묵하거나 노쇠하여 기댈 곳이 갑자기 없어졌다는, 어설픈 내 생각이 너무 커버렸는가 하는 허무주의에 시달린다.
거리의 현수막엔 한물간 가수들의 공연 소식이, 시민들의 자의식의 표현인 듯 내걸려 있고, 홍상수의 <생활의 발견>이 원주에 왔다는 소식을 금방 들은 것 같은데, 눈깜짝할 사이에 극장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원주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볼 기회는 박탈되었다. 개인의 게을음을 탓하는 것이 맞겠지만 문화적 환경이 그렇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인 김지하와 오탁번 혹은 소설가 박경리와 같은 한국문학의 상징들이 원주를 거쳤거나 그 흔적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특정 정신 영역만 이데올로기적으로 강조되거나 계승되고 정작 되살려볼만한 문학적 향취는 자취를 찾을 길이 바이 없으니, 갑자기 원주가 황량해 보인다는 생각도 초여름볕에 묻어왔다.
ㅍ안나푸르나라는 이름에 끌려 네팔을 트래킹하고 돌아온 스님의 홈페이지는 미륵산에 간다는 일정을 잡아놓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몽둥이와 고함의 찜질로 다가왔다.
내 삶이 허위와 미래없는 제자리걸음에 붙잡혀있다는 것이 순간 분명해 졌다.
삶에, 무엇이 두려우랴! 두려움만이 두려울 뿐인가, 하는 관념적 망설임 앞에서 나는, 우리는 각자의 안나푸르나를 꿈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한꺼번에 왔다. 안나푸르나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게 되는 활력의 공간이다. 소란과 잡답을 벗어나 자기를 세상의 중심으로 밀어넣게 하는 곳.
온갖 주장과 반론과 성명과 인터뷰와 학설과 비판의 정당성을 일거에 버리고 자기로 돌아가게 하는 상징의 공간으로 안나푸르나를 꿈꾼다 아니(겸손한 어조로) 꿈꾸십시다.
여름날 장미공원에서 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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