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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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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세 현 (상지영서대·언어예술과 교수)
며칠전 사무실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 전화는 익명의 시민에게서 온 것이고, 본인은 서울에서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았고, 용건은 우리 대학 평생교육원에 소설창작 관련 강좌가 설강되어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었다. 몇 가지 사무적인 얘기를 주고받는 가운데, ‘대학과 지역사회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문예창작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어야 하지 않느냐’라는 것이 그 시민이 주장하는 논지였다.
내 귀를 신선하게 붙잡은 것은 ‘자존심’이라는 한 마디의 언사였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실종되었던 언어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듯한 기분이어서 얼떨떨했다.
문학관련 강좌와 대학의 자존심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짐작컨대, 문학이 물질에 맞서 정신적 높이를 추구하는 예술적 제도의 하나라는 점에서 문학과 정신과 인간됨의 자존심이 하나의 선상에 놓이는 것이 아닌가, 여겨본다.
그 말은 일견 20세기를 지배해온 하나의 관념이기도 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인간적 자존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다.
깨놓고 말한다면, 현대인들은 자존심을 챙길 여지가 없이 떠내려가며 그날그날에 급급한 삶을 영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울증을 버릴 수 없다. 인간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기품을 유지해야 하는데, 돈만 추구하는 세태는 그럴 겨를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자존심만이 아니다. 용기, 비판정신등이 봄눈녹듯 모두 소멸되었다.
돌아보면 어디에도 이런 조짐과 소리가 없다. 그나마 신문 구석에 있는 시민의 소리같은 코너에서 호소하는 갸냘픈 비판의 소리가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최근의 미국의 북한관, 정부의 실패한 정책, 반환하기로 되어있던 용산 미군기지내에 미군의 아파트 건립 문제등에 대해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있다. 비판정신의 노화인지 아니면 비판세력의 야합인지 모르겠다. 비판이 거세된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지점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묻게 된다.
한때 우리 사회를 풍미했던 그 흔한 양심과 신념들이 이해나 기득권과 맞교환되면서 자존심을 버린 것은 아닌지 재차 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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