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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있어 선과 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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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 경(한라대 교양학부교수)
생명의 탄생은 새로운 존재를 중심으로 하여, 새 우주가 펼쳐지는 것이기에 신비롭고 경이롭다.
그러나 이러한 존재가 다시 그 우주를 마감해야 하는 ‘죽음’이란 사건은, 그 탄생만큼이나 아니 탄생보다 더 충격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의 충격은 일생 겪게되는 그 어떤 충격보다도 강하다는 심리학적인 견해에 비추어, ‘죽음’을 향해 나가고 있는 유한존재들의 ‘두려움과 생에의 본능적 욕망’은, 그 일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는 ‘종교의 기원’이 된다고 융은 말한다. 실존주의자들이
‘인간은 유한한 시간을 채워,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고 말하듯이 죽음이 삶의 시간대에 끼치는 영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이다. 죽음은 삶의 시간대를 반대로 메꾸어 가는 신비 속에 놓여진다.
죽음은 탄생과 같이, 동일한 연장선 양끝에서 서로를 채워나간다.
인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칼 융)’으로 신앙과 종교, 각종 제사와 의례를 만들었으며, 유한한 존재의 시간을 연장시키는데 무수한 정열과 재화등을 쏟아왔다.
영생을 말하는 기독교는 말할 것도 없고, 무위자연의 도교나 인생의 공(空)과 허무(虛無)를 역설하던 불교마저도 ‘불노장생’, ‘장생불로(長生不死)’, ‘윤회’를 말하며, 존재의 영원성과 무한성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이렇듯이 존재의 유한성에 맞서는 인류의 저항은 그야말로 인류의 태초로까지 역사를 거슬로 오르는 대장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교로 지칭되기도 하는, 샤머니즘은 북해 연안의 시베리아, 극동, 아프리카, 심지어는 바티칸이 인접한 지중해에서까지, 전 대륙에서 그 전통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종교형태이다. 샤머니즘에서의 핵심은 ‘접신(Trance)’과 ‘탈령(Ecstacy)’에 의한 영혼의 비상(飛翔), 천계상승 및 영혼의 인도자(샤먼)로 요약되는데, 이는 곧 영혼의 불멸성, 계세성(繼世性), 불사성(不死性)이란 우주관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바, 한국인의 전통사상 및 고유신앙에 있어 죽음은 존재의 유한함(종말)을 드러내는 사건이 아니라 존재의 영원함 (다른 세계로의 탄생)으로 받아들이는 사건이었음이 주목된다.
원주 역시 고려말까지는 정부에서 각 군, 현, 목에 샤먼(만신)을 마을의 치료사와 제천행사및 정신적 지도자로서 내려보내었다고 <조선무속사>는 기술하고 있다. 무속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실제적 삶이었고, 정신적 문화유산이었다.
그러나 일제 침략 이후 문화말살정책과 한국인의 언어와 얼을 찬탈하려던 일제에 의해 이와 같은 우리의 정신문화는 ‘미신타파’의 첫 번째 대상이 되었고, 팔관회등의 기원을 두고 있는 신당(神堂)은 을씨년스러운 ‘귀신소굴’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 조상들은 산사람은 물론 죽은 영혼들마저 선영(善靈)과 악영(惡靈)으로 나누어, 살아 생전에 죄를 짓지않고 착하게 산 사람들은 선한 사자(使者)가 와서 극락으로 데려가고, 나쁜 사람은 불사지옥으로 데려간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한국인 우리들에게 있어 선(善)과 악(惡)은 단순히 윤리적 가치의 기준이 아니라 우주물리관이자 생태관이었으며, 세계관의 기준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공교육과 가정과 학원에서의 사교육은 더 이상 선/악의 문제를 중시하기는 커녕 돌아보지조차 않는다. 놀부를 흥부의 무능력 위에 두고, 허생원의 매점매석을 경제력으로 파악한다.
가치는 변한다. 하지만 선과 악의 개념은 한국인에게 있어 도덕적, 윤리적 가치기준을 넘어 우주 물리관이자 생태론적 존재론이었음을, 언제쯤 우리는 다시 깨달을 것인가?
교육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행위가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닌지, 우리가 진정 지향해야할 바를 우리는 서구가 아닌, 바로 우리의 선조로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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