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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원 짜리 할망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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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오월이 왔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어린이를 예찬하고, 부모를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는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어 가히 살맛 나는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보이지 않는 한편에서는 어린이가 박해를 받고, 부모가 버림을 받고, 스승이 홀대받는 세태가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있는 것은 덮어둔 채 말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고 노부모 섬길 날이 오래지 않음을 느껴 학업을 던지고 귀향하여, 부모를 봉양하는 자제가 많았다는 것은 2천년 전 공문(孔門)의 일이려니와 동방예교(東方禮敎)의 근본은 효행이 으뜸이었다.
충신도 효자의 문(門)에서 구한다 하였고 우리들 오랜 습속에 젖어온 삼강이나 오륜도 실은 효도가 그 근원이며 출발점이었다.
불효를 따지는 조목만 3천이었다니 효를 극진히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자식되어 불효라는 꾸지람을 받게되면 이보다 더한 수치는 없었다.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자식이 고발하였대서 정직함이 아니냐고 묻는 말에 중니(仲尼)는 “아버지는 자식을 위하여 숨기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하여 숨기는 가운데 직(直)이 있다”고 하였다.
부자간에선 허물도 숨기는 것이 유친(有親)이라 하여 역시 효를 강조받던 세대는 이미 떠나가고 있다.
지금의 오십대는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들 한다. 가치관의 혼돈시대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세대이기도 하기에 매년 오월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지 모르겠다.
라디오 프로그램인 여성시대에서의 편지글이다.
고만고만한 동네의 초라한 노인정에서의 일이다. 매일 정오가 되면 오백원씩 각출하여 라면을 끓이고 소주라도 몇 잔 반주로 곁들이는 일이 일과였겠다.
하루는 할머니 한 분이 주머니에 손만 넣은 채 머뭇거리며 돈이 없다고 하자, 채근하던 집사 할머니가 “그래 며느리가 오백원도 안 줘”, “응 잔돈이 없대”, “그러면 큰 돈 주면 되잖아” 돈 못 낸 할머니가 멋쩍은 듯 “누구 나 오백원에 살 사람 없소” 그러자 “그럼 내가 사리다” 하며 한 할아버지가 천원을 내시면서, “그럼 이 할망구 내가 샀으니 이제 내 할망구요” 하드란다.
어찌어찌 이런 사연으로 인해 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함께 사시게 되었는데, 할아버지 혼자 사실 때 생활비로 오십만원 정도가 빠듯했는데 두 분이 함께 생활하시다보니 그 돈에서 몇 만원 정도는 남는다며 끝을 맺었다.
이 편지글에서 노년의 불행과 행복이 무엇인가가 완연히 나타난다.
며느리가 정말 돈이 없어서 안 드렸을까. 어쩌면은 오백원 달라기가 치사스럽고, 죽기보다 싫어서 달라는 소리를 안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까지 미치면 몸서리쳐진다.
이건 부모자식간을 떠나 가족의 해체로 가는 붕괴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당 술좌석에서 흔히 나오는 조상자랑은 뭔 일인지 모르겠다. 조상의 썩은 뼈를 팔아 행세하려는 관념들이 은연중 머리 속에 남아있음을 가끔 볼 수 있다. 본관을 따지며 무슨 파(派)까지 드러내어 몇 백년전의 이름난 조상의 몇 대 손이라고 자랑을 하는 일이다.
조상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을 지냈으니 어쩌란 말인지. 저마다 자랑삼는 조상의 은덕 속에 불효의 때가 새카맣다.
부질없는 일이나, 한가지 말해도 좋을 것은 부모의 은혜를 십분의 일쯤이라도 알 수 있는 사람은 효자효녀가 되리란 점이다. 아마도 오늘에는 백 분의 일이나 천 분의 일쯤만 알아도 불효란 말은 듣지 않을 듯하니 말이다.
이은학
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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