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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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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 때 일이다.
구정 당일 아침 식사를 느지막하게 마치고, 차가 막히기 전에 떠나야겠다고, 서울을 빠져 나와 중부고속도로를 들어서자, 나와 같은 생각을 하였던 사람들이 많았는지 초입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사촌들과 더 놀지 못하고 빨리 떠나서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불평을 하고, 아내는 서둘러 떠나자고 보챈 나의 태도가 자못 고소한 듯한 눈빛으로 빈정거리는 미소를 슬며시 보냈다.
발이 저려오도록 브레이크를 계속 밟으며 성남으로 빠지는 인터체인지에 왔을 때, 주행차선에 남쪽 지방 차번호를 단 승용차 한 대가 30km의 속도로 가고, 그 차 앞으로는 도로가 텅 비어 차들이 고속도로 제한속도까지 속도를 내며 달려갔다.
교통체증의 주범인 차의 뒤에 있던 차량들은 계속하여 추월 신호를 보내며 추월선으로 들어가고, 추월 차선에 들어서서는 차 사고 났을 때 구경하듯 속도를 늦추며, 창문을 내리고 그 문제의 차를 향하여 한 마디씩 하고 떠난다.
구정 차례 상에 술을 한 잔 하였는지, 문제의 아줌마 운전사 옆에는 아저씨가 고개를 떨구고 자고 있었다.
아! 그렇게 느린 운전이 남쪽까지 계속된다면 어찌하랴!
문명이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하여지며, 우리의 삶은 어느 시대보다 우연이나 행운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다가오는 경우를 경험한다.
대학생 시절 친구들 3명과 설악산에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등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를 포함한 네 명이 여행사 버스를 타려고 보니 좌석 한자리가 모자랐다. 결국 우리 넷은 다음 차를 타게 되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10월이었다. 앞에 가던 버스가 떠난 지 10여분, 앞차가 갑자기 미끄러지며 전복돼 대형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카락이 솟는다.
그렇다면 과연 정상속도란 무엇일까? 차를 느리게 운전하는 아줌마를 두고 불평하는 나를 두고, 옆에 앉아 있던 아내는, 오히려 그 아줌마 때문에 속도들을 덜 내어서 대형사고가 나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냐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속도로에서 정상속도를 내지 못하여 다른 차량의 속도를 제한하고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경우를 생각하여, 그녀는 차를 처음부터 고속도로로 끌고 나오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여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용감성을 가진 아줌마라면 이렇게 악을 쓸 것이다:
남편이 술에 취하였는데, 술 취한 사람이 운전하다 사고가 났다면 어쩔 것이냐?
속담에, “나무만을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모두 자신의 맡은 바 일만 열심히 하면 사회가 안정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기계가 아니고, 우리가 기계라고 가정하더라도 그 기계가 노후화 되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IMF가 터졌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던 일단의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일터에서 일부 사람들을 두고 이런 말을 하였다:
그 사람은 정말 자신의 일만을 충실히 하였는데, 왜 그가 해고되어야 하는가?
그가 왜 피해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런 말을 우리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 해고된 사람은 나무만을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사람일 수 있다.
나의 입장만을 고려하여, 주위를 무시하면 우리는 불행한 결과에 이르고 만다.
나만이 열심히 일한다고 하여, 모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아줌마 운전자와 같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느림보들이 있다. 깜박거리는 정신을 가진 노인들이 고집스레 시대의 흐름을 막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에서 많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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