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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아래에서의 단상(斷想)-김명숙 교수(상지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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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이 좋아 더 가까이 산밑에까지 삶의 자리를 옮겨보았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구름 흘러가는 것, 새벽 골짜기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 나지막이 새가 날아가는 것,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장엄한 풍경화였다. 누가 자연을 조용하고 고즈넉하다고만 볼 것인가. 매일 매일, 시간 시간 펼쳐지는 자연은 너무나 화려하고 그러면서 질박하고, 변화무쌍하고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
집 옆 웅크리고 앉은 동산을 아침마다 넘어가면 산 속 강아지가 알아보고 꼬리를 흔든다. 언제나 조용히 쉬고 있는 듯한 산소엔 도시 어디에선가 다녀간 듯 꽃 한다발 얹혀있다.
서울 근교 묘지에 계신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난다. 조금 더 멀리 깊은 산속 호수까지 산책을 하면 아버님 연배의 노인들을 만날 수 있다. 내년 봄엔 두릅을 따주시겠다던 경상도 출신의 할아버지, 매일 시내로 게이트볼을 치러 다시니는 총명하신 할아버지, 이 분들과 담소를 나누면 내가 가르치는 한국 정치사가 한 눈에 보인다.
어찌 책만 읽고 역사를 말하랴! 학문이 현실을 추상화하는 작업이라지만 현실이 보이지 않는 추상만의 전달은 아무 의미도 없다. 하물며 내 옆의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인류애를 논한다든가, 사회 정의를 부르짖음 또한 공허한 메아리일 뿐.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기계 문명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인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상적 담론이라고 했다. 매스컴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침투해있는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많은 말들의 범람 속에 헤메고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독백과도 같은 수많은 말들의 외침을 거부하고 싶을 때도 많다.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은 각자의 아집과 주장으로 얽혀진 이해되지 않는 암호 - 그것을 암호라고 부르자가 아니라 ‘그대의 자리’에 앉아보는 이해심과 공명(共鳴)이다. 그러한 이해심과 공명은 비단 인간 사이에서 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민족이든, 혹은 인간과 자연 사이든지 간에 모든 인류 역사의 트러블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지 못하고 지배와 정복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추장은 개척 초기 백인들이 교회를 짓기 위해 땅을 팔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땅을 팔지 않습니다. 날아 다니는 새와 불어오는 바람을 팔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지요.”라고.
정복을 통해, 소유를 통해 신께 영광 돌리려던 사람들에게 그는 물질적 무장해제를 통한 인간 자유의 원천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 사이의 상호 이해의 자리이며 신과의 가까운 교감을 할 수 있는 지근거리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자연은 지하철 안에서의 살벌한 눈초리도 경쟁의 논리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 품의 넉넉함에 안기어보면 어느새 내 옆 사람이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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