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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와 양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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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코미디의 소재로 삼을 만한 것이 거지와 도둑밖에 없다.”
70년대 말 ‘저질 시비’에 휘말려 코미디 폐지론이 나왔을 때 한 원로 코미디언이 했다는 말이다. 6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는 “획기적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발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도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90년대 초 정치 풍자적인 코미디를 하다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한 젊은 코미디언은 70년대 말 원로코미디언이 했던 발언과 유사한 말을 했다. 즉 다시 심각할 정도로 소재의 제약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무조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조차 싫어하는 풍토가 있다. 아마 코미디의 소재가 되면 어떤 식으로 묘사되었느냐에 상관없이 자신이 웃음거리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매우 불쾌해 하는 것 같다. 이런 풍토에서 코미디언들은 어떻게 풍자를 통해 자연스런 웃음을 이끌어내는 코미디 본연의 활동이 가능하겠느냐고 하며 울분을 토로하곤 한다.
이것은 비단 코미디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특정 인물, 지역등을 잘못 묘사하면, 이에 대해서도 강력한 반발과 항의가 뒤따른다. 과거에 특정 직업집단이나 지역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곤욕을 치른 영화나 드라마가 꽤 있었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런 예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경우 의도적이고 악의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뉴스나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조금 잘못 표현했더라도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창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배려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와 드라마 ‘왕건’에 대한 항의와 비판이 제기됐다. 판문점 지역에서 근무했던 전우회 10여명이 ‘공동경비구역 JSA’가 “왜곡된 사실묘사로 판문점 전우회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하며 이 영화 제작사에 찾아가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또 드라마 ‘왕건’이 당시 원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양길’이라는 인물을 ‘도적’으로 묘사한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왔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와 드라마에 실제 사실과 다른 점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부분 때문에 본의 아니게 관련된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불이익을 주었을 수도 있다.
일차적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최대한 잘못된 표현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허구의 세계를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완벽하게 현실을 그대로 묘사할 수 없다는 점도 이해해줘야 한다.
따라서 악의적이고 의도적으로 특정 대상을 왜곡한 것이 아니라면, 이제 우리도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코미디가 거지와 도둑 말고 다른 소재도 다룰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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