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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축제’ 가 아닌 ‘우리들의 축제’돼야
2000년 09월 07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유난히 무덥게 느껴졌던 더위에다 50여년 만에 헤어졌던 가족들을 만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에 마음을 쏟다 문득 달력을 넘겨보니 추석이 코앞이다. 순간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띵해지는 듯했다. 아, 나도 명절증후군!
어릴 때 명절은 새옷, 새뱃돈 그리고 평소에는 먹기 힘든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찬 날이었다. 모처럼 버스를 타고 큰댁으로 가는 길은 신나는 여행길이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촌들과의 놀이도 재미있었다. 친척 어른들이 쥐어 준 돈을 세어보는 재미도 쏠쏠하였다. 어느 때 부터인가 명절이 그저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명절이 전국에 흩어져 살아가는 가족들이 모처럼 만나는 즐거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외롭다고 여자들은 말한다. 몇 주 전부터 김치 담그고, 마늘 사놓고 당일 날은 전 부치기, 송편, 만두 빚기, 집안 청소며 제기닦기까지…. 밥상을 치우기가 무섭게 술상을 차려야 하고, 수십가지의 먹어 볼 것도 없는 차례 음식을 장만해 놓고는 정작 차례상에 절을 하는 건 고스톱이나 치고, TV 보고 있던 남자들이다.
24시간 근무대기 상태의 파출부로서 한 몫 단단히 노가다를 치를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배운 여자건, 사회의식이 있는 여자건, 맏 며느리건, 막내 며느리건 인정사정이 없다. 잔꾀 좀 부리고,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결혼을 해 남의 집 며느리가 되었으면 그 정도는 해야지’ 하는 윽박과 집안의 화합을 위해서 참아야지 하는 협박에 추석을 앞둔 이땅의 숱한 며느리들은 소위 ‘명절 증후군’ 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명절은 여자에게 휴식도, 즐거움도, 귀향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를 의미한다. 해서 여자들은 명절을 ‘당신들의 축제’ 라고 말해왔다.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생활속의 차별사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여성들이 말한 차별사례 2천여건 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명절, 제사상의 차별이었다.
이는, 여성들이 여성으로 태어난 설움을 가장 심하게 느끼는 날이 바로 1년 중 가장 좋은 날이라는 설날, 추석이라는 것이다.
명절 상차림에 필요한 그 많은 음식장만에서부터 뒷설거지까지 왜 오로지 여성만의 일이어야 하는지, 친정아버지 생신과 시할아버지의 제사가 겹칠 때 왜 시댁일을 우선적으로 봐야 하는지, 일은 여자가 다 하는데 절은 왜 못하게 하는지, 시댁에 가서 얼굴도 못 본 조상을 모시기 위해 며느리은 쉴 틈도 없이 일을 하는데 아들은 놀고 먹기만 해도 되는지, 딸만 둔 부모의 제사는 어떻게 모실지등 여성들의 답답한 사연은 끝이 없었다.
그래서 명절이 여성들에겐 노동절 이라고까지 하는 것이다. 사회가 변모하여 명절을 휴가로 보내는 집이 늘어가고 있고, 웬만한 음식은 다 사서 하는데 무슨 엄살이냐고 하지만 아직은 온갖 상차림과 식구들 뒤치닥거리로 허리가 휘는 여성들이 훨씬 더 많다.
명절증후군의 원인은 명절이나 제사를 맞아서 주된 일처리를 해야 하는 주부로서 신체적, 노동적, 경제적 부담이 커져서 스트레스가 되는 것과, 평소에 쌓여 있던 남편과 시가족에 대한 갈등과 불만이 명절이나 제사 과정중에 두드러지게 인식되는 남녀차별로 인해 피해감과 분노로 폭발하는 것이다.
명절주부병의 근본적인 치유는 우리 사회의 봉건적인 남성중심의 가치관이 바뀌고 가정문화가 달라져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명절 보내는 과정이나 제례의식에 일방적이고 남녀차별적인 것을 어쩔 수 없다고 구속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여자인 나의 명절이 되도록 적극 변화시키고 조정해야겠다.
명절문화 바꾸기 운동은 사실 매우 뿌리깊은 성차별 문화의 개혁과 맞서는 일이다.
딸도 조상을 모실 수 있고, 딸도 차례상에 절을 하고, 시집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한다는 것은 재래의 유교적 관행을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실상, 우리 사회의 가족문화를 새롭게 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 21세기를 앞두고 한국사회 발전에 발목을 잡은 것을 들라면 가부장제 가족문화가 으뜸으로 꼽힌다. 명절바꾸기 여성운동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문화적 장애물을 넘어서기 위한 큰 걸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한가지씩이라도 이루어보자.
당신들의 축제가 아닌 우리들의 명절을 함께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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