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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만든 내 성적표
2004년 08월 16일 (월) .
김정자??(횡성초교 교사)

방학을 며칠??앞 둔 날이면 나는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무엇인가로 부터 해방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임을 분명히 느끼지만 또 한편으로는 위에서는 물을 담는데 아래에서는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물독을 보는 것 같은 생각도 그 반이다.

방학 첫날부터 벌써 선생님이 보고 싶느니 개학을 빨리 했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아부성 담긴 귀여운 메일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방학은 나를 곧잘 무능의 무대로 올려놓아 나는 어쩔 수 없는 무지의 배우가 되어 관객 없는 무대를 이리저리 오간다.

해마다 해왔듯 아동용과 어른용의 책이 반반씩인 책장을 훑어보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발견한 파일 하나 <아이들이 만든 내 성적표>를 꺼낸다.
연이어 6학년을 시작한지 다섯 번째 되던 해의 아이들이 만들어 준 성적표를 모아 놓은 것이다. 그 해에도 어김없이 아이들의 성적표를 작성하던 방학 전이었을 게다.

<선생님의 성적표 만들기>
꼭 해야하는 거지만 내 눈에 비친 아이들의 모습을 적는 의례적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마디 던진 주제였다. 나는 너희들의 성적표를 만드니까 너희들은 선생님의 성적표를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은 의외로 신이 나 했다. 그래 놓고 나는 그 날 저녁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일정한 양식이라는 것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대로 표현해도 된다 했지만 아이들에 비친 나의 모습에 대해 이 아이들은 어떤 말을 어떻게 적어 놓을지 정말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아이들은 자기 눈에 비친 대로 그대로 적어 놓을 것이니까 그러니까 거르지 않고 액면 그대로 표현할 것이니까 어떤 적나라한 면도 있을 것이다란 생각에서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 나는 아이들에게 수집한 나의 성적표를 금방 보지는 못했다. 집게로 흩어지지 않게 묶고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적표를 다 마무리 할 때까지 들춰보지 않았다. 그때 내 마음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 보는 기대감과 같았다는 생각을 한다.

방학하는 날 아이들에게 방학계획을 설명해 주고 성적표를 받아 가는 아이들과 그동안 공부하느라 수고 했노라며 악수를 청했고 빈 교실에 아쉬움을 남긴 채 방학은 시작이 되었었는데 ….

그 후에 나는 틀림없이 이 성적표를 틀림없이 보았겠는데 지금 다시 보는 나의 성적표는 정말 그때 기분과는 남다른 기분이다.
-선생님의 성적표를 우리가 어찌 감히 만들겠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적을 수가 없습니다.
공부시간엔 나와 눈 마주치기를 늘 꺼려하던 녀석이 남긴 말이다. 그 아이가 이런 표현을 썼다는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담과목이어서 내가 체육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후한 점수는 아니길래 나는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중 고등학교 때는 배구 선수였노라고 변명을 했던 생각이 난다. 하여튼 다 소개는 할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 아이들이 나를 너무나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게 잘 보이려고 듣기 좋은 말을 한 것은 없었다. 내 자신도 놀라리 만큼 구석구석 나를 파헤쳐 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게 좋은 말이든 귀에 거슬리는 말이든 옳은 말인 것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었다.

그런 다음에는 나는 과연 아이들을 이렇게 정확히 보고 있었는지 선생님은 나를, 우리 아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구나 라는 소리를 듣고는 있는지 부끄러워지곤 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정한 양식이 없어도 나를 생각하며 바탕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에 너무나 자연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허락이 될지 모르지만 나도 언젠가는 아이들 개개인에게 그리고 싶은 그림을 바탕으로 한 성적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또 했다. 십 여년 만에 맞는 무더위라는 이 여름에 영원히 변하지 않을 내 성적표를 보는 일은 그 진실함에 새삼 깜짝 놀라고 늘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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