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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와 <연어>
2004년 06월 28일 (월) .
임영규 (진광고 교사)

지난 6월초에 전국적으로 수능 모의고사를 치렀다. 오는 11월 17일 있을 2005학년도 진짜 수능시험을 위한 연습이라고 하여 우리 학생들은 또 한번 실험도구가 되었다. 수 백억 원의 예산과 많은 인력, 1-2학년 학생들의 수업권 박탈 등 많은 아픔 속에서도 진짜 수능을 잘 준비한다고 하니 무슨 말로 거역할 수 있겠는가? 나도 고3 담임인지라 아이들 수능 원서를 작성하고 꼼꼼히 확인하여 교육청으로 보내어 이번 수능 모의고사를 잘 치르도록 도왔다.

그러나 정작 이번 시험이 주목받은 것은 ‘수능 연습’보다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비 경감대책 차원에서 올해 수능시험을 EBS 수능강의와 연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과연 이번 모의고사에 EBS 교재에서 얼마나 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시험 후에 EBS에서는 언어 87%, 외국어 78%, 수리 66%가 출제되었다고 배부한 분석자료를 통해 밝혔다. 내가 가르치는 언어 영역의 경우 60문항 가운데 86.7%인 52문항이 방송강의 내용에서 출제됐다고 밝혔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수업 중에 우리 학생들과 같이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같은 문제나 유사한 문제는 단 한 문제도 나오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지문이 비슷한 문제는 몇 개 지문이 되지만 시중 문제집에 다들 들어있는 지문이었고, 과학 지문 이인규의 <미래의 무기, 생물자원>만 의미 있는 지문이고, 난쏘공은 EBS 교재에 있는 것과 실제 시험문제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EBS에서 87%가 나왔다고 교육방송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공교육을 활성화하자고 하는 의도는 좋은데, 교육을 가르치는 교육방송이 거짓말을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한편 EBS의 말이 사실이었어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만약 이번 수능 모의고사에서 교육방송의 말대로 EBS에서 많이 나왔다면 그렇지 않아도 고3 교실에서 교과서는 뒷전이고 EBS 문제집만 풀고 있는데 모의고사에서 많이 나왔으면 우린 계속 EBS만 풀어야 하는 기계 같은 교사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얘기인가? 국가가 참고서 판매회사로 전락하는 것이 되고 학교마다 정규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내팽개치고 EBS 문제집만 풀어야 하는, 공교육 정상화를 도리어 역행하는 한편의 코미디가 벌어지게 될 판이었다.

보통 중요한 시험이 끝나면 교육과정이 잘 반영되었는가? 아니면 그 교육과정에 기반한 교과서에서 얼마나 출제되었는가를 논해야 그게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번 수능 모의고사에서도 교과서에서 얼마가 출제되었는가 하는 것은 이번 출제를 맡은 교육과정평가원에서도 한마디 없고 교육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이 땅의 고3 교사로 사는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내일도 모레도 EBS 문제집만 풀어야 하는지…

안도현의 <연어>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먼 바다에서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가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연어들이 마침내 폭포를 만나게 된다. <연어>는 연어의 모천회귀성 삶을 통해 우리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은빛연어 한 마리가 누나연어를 잃고 눈맑은연어와 사랑하며 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폭포’를 만나게 되고, 그 폭포를 오르기 위한 연어들의 대책회의가 벌어진다. 이 대책회의 중에 연어들을 가르치는 교사연어인 ‘지느러미긴연어’가 등단하여 폭포를 오르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도리어 등굽은연어를 다그치는 장면이 나온다.

먼 바다에서 자신이 태어난 하천에서 산란하기 위해 오는 중에 강물이 오염되어 등이 굽었는데도 지느러미긴연어는 등굽은연어에게 나약하고 게을렀기 때문이라며 모든 잘못을 덮어 씌웠다. 작가는 지느러미긴연어와 등굽은연어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우리 교사는 수능 시험 등을 대비하기 위해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는 5지선다형 출제를 하여 찍기에 능숙하도록 우리 학생들을 훈련시킨다. EBS 문제집을 풀면서도 폭넓은 사고력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하고 수능 점수를 어떻게 하면 더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우리들은 학생들이 창의력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마치 환경이 오염되어 연어가 등이 굽었는데도 그 연어가 나약하고 게을렀기 때문에 낙오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한가지 더, <연어>에서 폭포를 오르기 위한 대책회의 결과를 보면 연어들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쉬운 수로를 포기하고 거친 폭로를 거슬러 뛰어 오르는 결정을 한다. ‘쉬운 길은 길이 아니라’는 은빛연어에서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바로 쉬운 길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이 땅의 교사로 살고 있는 나는 학생들을 쉬운 길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학생들도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성서의 ‘좁은 문’의 지혜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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