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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의 ‘눈’과‘가슴’이 정답
2003년 11월 06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교단칼럼/함영기(원주고등학교 교사)


너희들의 ‘눈’과‘가슴’이 정답


장면1


지난 12일 교동초등학교 운동장, 제1회 ‘79 동우회 체육대회’-79년 원주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40대 중년의 ‘아저씨’,‘아줌마’들이 졸업 후 24년 만에 만났다. 6개 고교 졸업생들이 청·백팀으로 나누어 운동도 하고 소주도 몇 잔씩 했다. 끝없는 옛 추억거리들이 이어졌고, 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 생활 친구, 담임과 학부모가 얽히고 설켜서 더불어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이 용광로 안에서 녹아 모두 합금(친구)이 되고 있었다.


치악산 산삼 썩은 물을 함께 마시고 자라난 “우리는 친구”가 주제였다. 이 날 함께 했던 수 백 명의 친구들은 모두 공감했다. 즐거움과 후련함을…. 좁은 지역 사회에서 세속을 살아가는 갑남을녀(甲男乙女)들의 가슴을 이리저리 찢어발겼던 ‘연고(緣故)’주의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이 얼마나 상쾌한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쪼개고 쪼개서 보잘 것 없는 미세한 알갱이들이 몇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살다가 아주 큰 ‘하나’가 됨을 체험했다. 이 체험을 더 키워서 남과 북이 하나되어 살아야 할 겨레의 미래를 우리가 이끌어 보자꾸나.


장면 2


그 날 환호성이 연발하는 가운데 시상식, 폐회식이 이어지고 있을 때 화장실을 다녀오던 필자의 눈을 찌르며 순식간에 날아와 내 가슴을 꿰뚫어 버리는 ‘괴물’이 있었다. 우리들에게 30년 동안 가위눌린 채 외마디 절규만을 강요해온 이데올로기 괴물이 있었다. 잘 가꾸어진 초등학교 정원에 아직도 당당하게 버티고 서있다. 이승복 어린이 동상.
‘너’야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마는 ‘너’의 참혹한 죽음은 우리 겨레의 갈 길을 얼마나 오랫동안 가로막아 왔던가? “역사는 선(善)한 사람의 ‘피’값을 대단히 높게 평가한다”고 했는데 그래 ‘너’는 착한 소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미묘한 것은 ‘너’의 ‘피’를 높게 평가하면 겨레의 비극은 더 오래 갈 것이고, ‘너’를 평가절하하면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이런 생각을 늘 했지만 오늘은 정말이지 ‘너’의 존재가 내 가슴을 저미고 다리에 힘이 빠져서 후들거리게 한다. 천천히 네 앞으로 다가갔다. ‘너’를 쓰다듬다가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어지러운 마음 추스릴 사이도 없는데 준엄히 닥쳐오는 역사의 파도 앞에 우린 검증된 모범 답안도 없이 무모하게 살고 있다. 논리가 귀찮다고 한다. 진부한 넋두리로 전락했다. 흑백논리 앞에서 선택과 추종을 강요받으며 살아 왔다. 정치 권력이 그렇고, 보·혁의 대립 상황이 그렇고, 교육 현안들이 그렇고, 이라크 파병이 그렇다. 우리지역 현안문제(고교 입시제도)들도 그렇다. 창, 칼, 비수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 길은 없어 보인다.
어렵다. 어지럽다. 힘겹다. 그렇지 얘들아! 안녕(安寧)할 수 없는 ‘우리 누리’에서 오늘도 ‘우리’ 유망주들 앞에 분필 들고 섰다.


장면 3


원주고 교실.


로마 황제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마르코만인 人과 싸울 때 “나는 사자(獅子)를 전투에 참여시키겠다”고 했다. 로마 병사들은 사나운 사자들이 적군을 다 물리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안일하게 싸움에 임했다. 반면에 마르코만 군의 장군은 돌진해 오는 로마군의 선봉 맹수 중의 맹수인 사자들을 가리켜 “저 것들은 로마의 개(犬)다”라고 외쳤다. 장군을 믿는 마르코만의 병사들은 미친개를 두드려 잡듯이 로마의 사자들을 쳐서 기적 같은 승리를 했다. 마르코만인의 장군은 얼마나 현명한가? 그의 말 한마디에 그의 병사들은 두려움 없이 용감하게 사자들을 개 잡듯이 이긴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 실체를 정확히 알기도 전에 그 이름에 얼마나 현혹되어 지배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얘들아! 우리를 괴롭히는 혼돈의 정체는 사자(獅子)가 아니라 개다(犬)” 보아라, 그 해답이 여기 있다.
동진이 가슴을 보라! 병진이 가슴을 보라!


진욱이 눈빛을 보라! 너희들의 맑은 영혼! 너희들의 때묻지 않은 양심! 이것이 겨레의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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