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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가시나무
2002년 11월 28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차 한잔의 사색 - 양 승 준

(시인·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

·<북원문학상> 및 <원주예술상> 수상

·<시와 시학> 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영혼의 서역>

·저서 : <한국 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1·2

·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현 원주여고 교사 및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강사






선생님, 참으로 빠른 세월입니다. 8월말이었던가요, 이 지면을 통해 선생님께 가을 인사에 부쳐 ‘글루미 선데이’라는 영화 이야기를 드렸었는데, 결국 이번에도 그때처럼 세월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하게 되는군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세월을 의식한다는 것은 아마도 그간 이루어 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부끄러움 내지 이제라도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 혹시 기억하시는지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만들고 부른 ‘가시나무’라는 노래 말입니다. 애잔한 멜로디에 얹혀 전해지는 서정성 풍부한 노랫말은 이미 그것으로 아름다운 한 편의 시(詩)였지요. 최근 저는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예쁜 여고생들과 함께 이 노래가 담고 있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시적 화자야말로 어쩌면 제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와 내면 속의 ‘나’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그는 무엇보다도 자의식이 강하고 욕망이 많은 사람입니다.

현실 속의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한 사랑으로 ‘당신’을 맞아들여 더욱 가까운 존재로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내면 속의 ‘나’가 너무도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까닭에, ‘나’의 품에서 안식과 평화를 얻고자 하는 ‘당신’을 나는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마저 ‘나’에게 깃들게 하지 못할 만큼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은 ‘나’는 그로 인해 결국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속에 갇혀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시적 화자가 겪고 있는 고통의 근본 원인은 바로 ‘나’ 속에 존재하는 ‘헛된 바람’에 있습니다. ‘헛된 바람’이란 곧 온갖 세속적 욕망의 비유로, 그것은 마침내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이 되어 ‘나’를 슬픔 속으로 자꾸만 밀어 넣습니다.


선생님, 저는 아주 오래 전에 세속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개’에 비유하여 “욕망이 욕망을 낳고 / 또 다른 욕망을 키우듯 / 뼈다귀도 뼈다귀를 낳고 / 또 다른 뼈다귀를 키우는 것이라면 / 나도 이 뼈다귀 하나 입에 물고 / 저들처럼 밤새도록 으르렁대도 좋으리”라고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서로 더 많은 뼈다귀를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대는 욕심 많은 개의 모습, 그러나 그 개는 바로 저였습니다.


제 속에서는 끊임없이 욕망이 피어오릅니다.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 멋진 사랑을 하고 싶다는 욕망, 유명한 시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등 숱한 욕망들이 제가 지나온 그 많은 세월 동안 제 영혼을 덮고, 제 몸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 그런 욕망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질 날은 언제일까요. 그러나 제가 이 땅에 목숨을 붙이고 사는 동안에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지요. 그 깊디깊은 욕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가 손바닥 뒤집기 만큼 쉽다면 어느 누가 부처가 되지 못하겠습니까.
선생님, 어느덧 세상은 온통 겨울입니다. 한해 동안 열심히 키워낸 자신의 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저 창 밖의 나무들이 오늘따라 몹시 춥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짐작하건대, 저 나무들은 욕망에서 벗어난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이 삼동(三冬)의 깊은 어둠도 행복하게 건널 것입니다. 욕망을 하나씩 버림으로써 진정 자유로워지는 나무의 지혜, 내 안의 무성한 가시나무숲도 제발 그것을 깨우쳤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어느 면에서 인간은 욕망에 사로잡혀 고뇌할 때가 더욱 아름답고 인간다운 것 아닐까요. 겨울 내내 이 욕망들과 싸우며 곰곰이 생각을 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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