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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 만한 곳
2002년 10월 31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양 승 준(시인·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

·<북원문학상> 및 <원주예술상> 수상

·<시와 시학> 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영혼의 서역>

·저서 : <한국 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1·2

·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현 원주여고 교사 및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강사








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이 쓴 조선시대 최고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선 원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서울과 250리 떨어져있고 동쪽은 큰 산과 두메에 가깝다.
산이 골짜기를 이루지만 그 사이로 들판이 열려 있어 매우 명랑한 분위기를 준다. 여기에다 두메와 가까워 난리가 일어나면 피하기가 쉽다.


또 서울과 가까워 세상이 평안하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까닭에 한양의 많은 사대부가 여기에 와 살기를 좋아한다.”
아마도 원주가 강원도의 일반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울의 풍습도 함께 지니고 있는 고장이라는 뜻일 게다.
「택리지」는 말 그대로 ‘사람이 살 만한 마을(里)을 고르는(擇) 책(志)’이란 뜻으로, 이중환은 풍수사상과 실학이념에 의거해 전국 8도의 수많은 마을을 평가하고, 그곳의 지리와 물자 수송 상태, 인심과 산수등을 기록하였다.


한편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우리 원주의 지형은 치악산이 시내를 굽어보고 남으로 백운산이 구름 속에 떠 있어서 흡사 한 마리 큰 용이 구름 속에서 노니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치악산 쪽과 백운산 쪽은 각각 지리적 성격이 다른데, 동쪽 치악산 줄기가 뻗어 내린 곳은 ‘봉황’의 모습이고 백운산 줄기는 ‘백학’의 형세라 한다.
이는 원주천 즉, 봉천을 경계로 동쪽에 봉산동이 있고, 서쪽에 학성동이 자리한 점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 있으며, 백운산에서 뻗어온 줄기는 포복산과 봉화산을 지나 우산에서 원주천을 감싸안고 있는데, 최근 들어 개발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이는 원주의 중심이 원주천 서쪽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원주는 백운산을 머리로 하는 백학이 날개를 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라고 한다.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은 봉우리 하나 하나가 마치 군사가 주둔하고 있음을 알리는 깃발과 같기에 삼국시대 이래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앞다퉈 원주를 차지하려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하며, 오늘날에도 육군의 주요 상급부대가 상주해 있음으로 하여 원주가 ‘군사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한다.


이에 반해 백운산은 학의 모습으로 문관을 대표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고려말의 대학자인 운곡 원천석이나 한말 의병장 민긍호의 활약, 그리고 70년대 이후 원주가 부정부패 규탄과 유신철폐의 기치를 높이 든 것도 바로 이 문인정신의 높은 기상이 발휘된 것이라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그런데 이중환은 「택리지」 발문에다 이렇게 썼다. ‘나의 이 글은 살 만한 곳을 고르려고 해도 살 만한 곳이 없음을 탄식한 것이다.’ 그리고 ‘인심’편에선 이렇게 썼다. ‘사대부가 사는 곳치고 인심이 고약하지 않은 곳은 없다.


당파를 만들어 죄 없는 자를 거둬들이고, 권세를 부려 평민을 침해한다. (지리와 인심을 살펴 마을을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대부가 없는 곳을 가려서 문을 닫고 교제를 끊으며, 홀로 착하게 사는 것보다는 못하다. 그렇게만 되면 비록 농사꾼이 되거나 장인이 되거나 장사꾼이 되더라도 즐거움이 그 가운데 있을 것이다.’


모름지기 이 말은 당시 당쟁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자, 사대부의 정신 개혁 없이는 조선에 유토피아란 있을 수 없다는 준엄한 경고라 할 수 있으며, 그가 ‘택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것은 바로 ‘그 마을에 사대부와 그로 인한 당쟁이 없을 것’이었다는 사실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결국 30만 원주시민이 모두 다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한 필요 조건은 뛰어난 풍수지리도 아니요, ‘힘있고 편안한 원주’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요, 새로이 시청사를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도 아니다.
우리 원주가 진정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초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목민관(牧民官)의 지혜와 함께 이해(利害)와 편견에 의한 편가르기가 없는 시민들의 진정한 화합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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