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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슬픈 자화상
2002년 10월 04일 (금)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양 승 준 (시인·원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56년 춘천 출생

·강원대 국어교육학과 졸업

·1992년 제5회 <시와 시학> 신인상 당선

·1998년 제1회 <열린 시조> 신인상 당선

·<북원문학상> 및 <원주예술상> 수상

·<시와 시학> 동인, <오늘의 시조학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 : <이웃은 차라리 없는 게 좋았다>,
<사랑, 내 그리운 최후>, <영혼의 서역>

·저서 : <한국 현대시 400선 - 이해와 감상> 1·2

·현 연세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현 원주여고 교사 및 상지영서대 언어예술과 강사










이땅의 많은 아버지들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식에게까지 ‘고개숙인 ’모습이 돼 버렸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 많은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한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좋은 직업이나 직장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또는 남들이 우러러볼 만큼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니 남들만큼 돈을 벌어오지 못한다는 이유로 해서 이제 이 땅의 아버지들은 제 자식 앞에서조차 ‘고개 숙인 남자’가 되어버린 셈이다.

삶의 성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설령 그 잣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삶이란 성공 여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많은 아버지들은 성공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인해 이젠 제 자식에게까지도 ‘고개 숙인’ 모습이 되어버렸다.

아버지는 가정과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임에도 늘 삶의 무게에 짓눌려 외롭게 살아가는 존재이다. 전통적인 가부장제 아래에서 아버지는 집안의 절대적인 지배자였다. 모든 가족들의 경외의 대상이자, 한편으로는 의지하고 싶은 종교와도 같은 존재였다. 게다가 “아들을 알려면 그 아버지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본(本)을 보이는 이상형으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아버지의 존재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IMF 시대를 겪으면서 그만 천길 나락으로 추락해버린 것이다.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어느날 갑자기 일자리를 잃고 ‘고개 숙인’ 초라한 모습으로 나타난 아버지는 가족들을 부양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무력감에 밤잠을 설쳐야 했고, 죄스런 마음에 자식들에게 큰 소리 한번 낼 수 없었다.


최근 ‘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작자미상의 글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실상을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이 글은 소설 못지 않게 네티즌들 사이에 잔잔한 감동을 낳고 있다.


“아버지란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다”로 시작해서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龍)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로 이어지다가 “시골마을의 느티나무같은 크나큰 이름이다”로 끝나는 이 글은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이 공유하고 있는 현실적 아픔과 아버지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 상처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해서 한 문화평론가는 “이 시에서 묘사된 아버지의 모습은 ‘약하지만 강한 척하면서 감정을 속으로 삭이는 사람’으로 강한 사람이 약한 모습을 보일 때는 겸손과 힘으로 비치지만 약한 사람이 강한 척할 때는 안쓰러워진다. 이 시가 감동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내 아버지만,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남들도 그렇구나 하면서 ‘집단적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분석한 바 있다.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 이제 필자 역시 자식들에게 이 말을 해야할 때가 된 듯하다. 좋은 직업이나 직장도 갖지 못했고, 높은 지위에 오를 수도 없게 되었으며, 많은 돈을 벌어오지 못하니까 말이다. 더욱이 그 실현가능성마저도 전혀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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