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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놀이에 대하여
2002년 09월 12일 (목)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조각가 박 광 필


·원주출생(1956년생)

·대성고, 청주교육대, 서울대 미술대학 졸

·원주 「지금, 여기서부터」전 출품및 운영위원

·속초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야외조각전 출품및
운영위원

·치악예술관 개관 초대전

·강원 감영 500년 기념 조형물 제작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지용주 선수기념상 제작






나는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작업실에 앉아서 흙을 주무르거나 망치를 두드리며 나무나 돌을 쪼는 시간보다 이리 저리 서성거리거나 의자에 걸터 앉아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훨씬 많다. 물론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작업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욱 많은 것은 사실이다.


작업을 진행하지 않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혼자 빈둥거리며 주변을 배회하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곳 저곳을 여행하기도 할 뿐 아니라 가끔씩은 북새통을 이루는 시장바닥을 찾아 가거나, 고물상이나 폐차장 같은 곳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요즘의 작업이 기능이나 솜씨를 우선하는 노동집약적인 장인 정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관점에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문제이거나 삶의 자각이나 소외나 갈등 또는 이론과 실재의 불일치등이 중요한 작업의 주제로 기능하고, 이러한 주제를 소화하기에 적당한 정도의 노동으로서의 기능이 부수적으로 요구되다보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문제의식을 느끼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동시대 삶의 현장은 작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생각이나 느낌을 익히기 위해서는 빈둥거리고 어정거리는 것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작업이라는 물리적인 일에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헤매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어떤 때는 몇 개월씩 작업실에 쳐박혀서 지낼 때도 있긴 하지만 그리 자주 있는 일은 아니며 그 결과도 썩 만족스럽지가 않다.


어쩌다가 욕심이 앞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생각보다 손발이 앞서 나가다 보면 결국 그 결과물은 노동의 축적만 보일 뿐이지 새로운 작업으로서의 생명력은 어느 구석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그저 그런 ‘물건’이 되고 말때가 태반이다. 가끔씩은 밀폐된 공간이나 책상머리에 앉아 고도의 정신 집중을 요하기도 하는 작업도 있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생각의 끈을 반쯤 놓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풀리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어쩔 수 없이 빈둥거리며 놀듯이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 까닭이다.


앞으로 주5일 근무제가 정착되면 우리는 ‘여가’나 ‘놀이’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철학자 호이징거는 “놀이란 그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행위이며, 노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1938년 ‘호모 루덴스’라는 그의 저서에서, 인간은 일반적으로 이성적 인간을 뜻하는 ‘호모 사피언스’라는데 대하여 유희의 인간 즉 ‘호모 루덴스’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는 이책에서 ‘놀이’의 근원을 인간역사의 기원 또는 그 이전에서 구한다. 종교, 생산, 구애, 각종 의례 그리고 예술등의 발생과정이 ‘유희’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보며, 이렇게 발생한 놀이가 사회와 문화의 발전을 형성시켜 왔다고 하면서 ‘놀이’를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의 답을 찾을 뿐 아니라 라틴어로 ‘여가(레저)’란 단어의 의미가 ‘천천히’ 또는 ‘느긋하게’라고 하여 ‘여가(레저)는 사색의 어머니’라는 격언도 있다고 한다.

이제 일하듯이 놀 때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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