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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의 어리석음이 싹틔운 새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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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 진 하
■강원도 영월 출생
■「세계의 문학」 시인으로 데뷔
■시집 「프란체스코의 새들」,
「우주배꼽」 등
■명상에세이 「영혼을 살아 있게 하는
50가지 방법」
■김달진 문학상 수상
■현재 기독교문화포럼 대표
삶이란, 내가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끝없는 놀라움일 뿐! 이라고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는 노래했다.
그렇다. 매일 아침 우리가 눈을 떠 맞이하는 태양도 놀라움이며, 그 태양이 뿜어내는 빛을 호흡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순간 순간도 놀라움이며 기적이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이 놀라움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가 매 순간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새 창조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것도 놀라움이며 기적이다.
산을 사랑하여 산에 몸 붙여 살아가는 이에게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언젠가 그이를 따라 산에 올랐다가, 그이로부터 이파리가 두 개 달린 새끼손가락 만한 단풍나무를 얻었다. 그이는 산에서 캔 단풍나무를 내게 전해주며 향기로운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늦가을이 되면 다람쥐는 겨울나기를 위한 양식을 저장해 두는데, 단풍 씨앗도 다람쥐의 양식으로 땅에 저장된다고 한다.
다람쥐는 단풍나무에 기어올라 팥알보다 작은 단풍 씨앗을 물어다가 땅에다가 묻는다. 그런데 기억력이 썩 좋지 않은 다람쥐는 자기만 아는 곳에 씨앗을 묻고는 자기가 파묻은 장소를 기억해 두기 위해서 하늘을 쳐다본다. 다람쥐가 하늘을 쳐다보는 이유는, 하늘에 떠 흘러가는 구름에다가 씨앗을 묻은 장소를 표시해 두기 위해서다. 자기가 씨앗을 묻어둔 곳과 수직의 위치에 떠 있는 구름에 눈도장을 찍어두는 셈이다.
그러나 구름은 머물지 않고 흘러가는 법. 막상 겨울이 되어 다람쥐가 자기가 묻어둔 단풍 씨앗을 찾으려 해도 이미 눈도장을 찍어둔 구름은 흘러가 버리고 말았으니 결국 그 씨앗을 찾지 못하고 만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온다. 다람쥐의 겨울 양식으로 땅에 묻힌 씨앗은 따스한 봄기운을 받아 새싹을 틔운다. 그것도 한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의 단풍나무가 소복이! 다람쥐의 먹이가 될 뻔한 단풍 씨앗은 구름에다 자기의 소유를 표시해 두는 다람쥐의 어리석음 때문에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무위자연의 조화와 어울림이 빚어내는 경이로움이 이야기 속에 깃들여 있지 않은가. 인간은 어떤가.
자기가 손에 움켜쥔 것은 어떻게든 오래도록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해서 붉은 도장을 찍어 등기해 두어야 안심하지 않던가. 그런 사람에겐, 구름에다 자기의 소유권을 설정해 두는 다람쥐가 한없이 미욱하고 어리석은 짐승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으리라.
나는 그러나 이 이야기를 단지 인간의 헛된 소유욕과 약삭빠름을 꾸짖는 우화로만 읽고 싶지는 않다. 다람쥐 같은 짐승뿐만 아니라 자연한 모든 존재들이 이런 조화로움을 몸으로 살지 않던가.
나는 매일 같이 나를 둘러싼 온갖 만물과의 교감 속에서 놀라운 삶의 신비 앞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인간이 정녕 인간다워지는 길은, 얼어붙은 땅에 묻힌 단풍 씨앗이 껍질을 깨뜨리고 새싹을 틔우듯이, 존재의 신비와 경이를 향해 사랑의 눈을 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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