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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의 죽음 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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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꽃잎의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자네 아무도 쓸지 않은 지 오래
산 그림자가 이불을 내려
그의 몸을 덮어 주네
비가 비를 때리는 밤에도」
<떨어진 꽃잎=전문>
이 시는 지난 5월 4일 이 세상을 떠나간 속초 이성선(李聖善)시인의 시입니다.
이 한편의 시 속에서도 감지할 수 있듯이 그는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속에 살다간 시입니다.
그래서 그를 일러 일명 ‘설악의 시인’이라고도 부릅니다.
그의 시가 아름다운 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오로지 하늘과 땅과 바람과 우주를 노래하다가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교직에 있으면서도 진급에 단계가 되기도 하는 일체의 보직교사 자리도 사양했다고 합니다.
또 그는 살아 생전에도 입버릇처럼 “내가 죽으면 조문객도 받지 말고 더더구나 조의금 같은 것은 절대 받으면 안 된다”고 했던 말을 그의 가족들로 부터 들었습니다.
또 내가 죽으면 화장을 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설악산 백담계곡에 그 혼백을 뿌려달라는 말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의 가족들은 그의 유언대로 장사를 치르었습니다.
언젠가는 나와 자녀들 결혼식 풍속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는 친척 몇분과 단촐하게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가서 치르겠노라’고. 그는 그만큼 세상이 서로간의 이 (利)속에만 묻혀서 순수함을 잃어가는 그 자체가 싫었던 것입니다.
그때 내가 했던 말은 “나는 내 한 부조금을 받기 위해서라도 청첩장을 내고 세상 풍속에 따르겠다”고 강변했던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인지 잘은 모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이 혼탁한 세상속에서도 이토록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정신을 지닌 시인이 살다가 떠나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연을 벗삼아 도(道)를 닦듯이 시를 썼고 또 그속에서 도(道)를 배웠던 것입니다.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진정한 시인의 길을 걸었던 한 사람입니다.
그의 죽음과 삶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즈음,
나는 나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겨우 네 평밖에 안되는 조그만 방에 수많이 쌓여 있는 앨범첩과 사진들, 일년에 단 한번도 쓰지 않는 많은 그릇들, 그리고 잡다한 옷가지들과 친구들! 저런 것들을 어떻게 버려야 할까? 하는 것이 하나하나 근심덩어리가 쌓여오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요?
버리는 일에 쉽게 길들여지는 일, 그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감히 우주로 혹은 자연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그 시간에 이를 것입니다.
살아서도 세속적인 것에 탐욕하지 않았던 사람! 진정 그는 시인이었고 도를 닦는 자세로 시를 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시가 아름답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가 다니던 대학, 모교에서 추도식이 열리던 날은 많은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그분처럼 고결하게 떠나지 못함에 대하여,
그의 시처럼 아름답게 살지 못함에 대하여,
알면서도 세상 탐욕을 버리지 못함에 대하여,
뒤에 남은 우리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더 큰 이유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문득,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라는 이 말은 어쩌면 이성선 시인 같이 세속적인 것을 초월했기 때문에 더 큰 자연속으로, 우주속으로 돌아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귀결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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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 영 춘
(원주여자고등학교 교장)
■강원도 평창군 봉평 출생
■원주여고 졸업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6년 제19회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제3회 윤동주 문학상
■제29회 강원도 문화상
(문학부문 1987)
■춘천 시민상(1999)문화
예술부문수상
■제10회 경희 문학상(1993)수상
■시집 《종점에서》, 《시지포스의 돌》,
《귀 하나만 열어놓고》, 《네 살던
날의 흔적》, 《점하나로 남기고
싶다》, 《그대에게로 가는 편지》,
《난 자꾸 눈물이 난다》,
《슬픈 도시락》
■수필집 《그래도 사랑이여》 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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