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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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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눈이 내려도, 대책 없이 추워도 어쩔 수 없이 봄은 오는가 보다. 불과 며칠 사이에 들판은 초록 쿠데타(?)의 조짐이 보이고, 논둑 밭둑에는 나물 캐는 할머니, 아주머니의 모습이 자주 보이기 시작한다.
벌써 봄인가 하여 앞밭을 나가니 봄나물은 이르고 냉이가 싱그럽게 군락을 이루고 퍼져 있다.
텃밭을 배회하다 지난 겨울 내내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던 우물가의 복수초가 생각나 발길을 옮기니 노란 꽃을 내밀고 홀로 피어서 제 존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잊고 지낸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노란 자태가 반갑기도 하여, 분에 옮겨 작업실에 놓고 즐길까 하다가 그대로가 더 아름다울 것 같기에 두고 보기로 하였다.
이 복수초는 몇 년전에 아는 분께서 주신 것인데 꽃잎이 진 후에 궁리 끝에 이 곳이 적지일 것 같아 분을 버리고 옮겨 심었던 것이 아직도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엄동설한을 견뎌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른 봄 주변은 삭막한 데 혼자 피어서 게으른 벌 나비를 기다리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또 뒤늦게 자라나서 주변을 덮어 버리는 생명력 강한 들풀들 틈새에서 낮은 키를 탓하지 않고 무덥고 긴 여름을 묵묵히 견뎌내는 그 인내심이 신기하며 그 척박한 토양에서 도대체 무얼 먹고 언제나 이른봄이면 저렇게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인지 정말 경이롭기까지 하다.
주변을 탓하지 않고 제 분수를 어쩌면 저렇게 잘 알고 있으며 이웃과 공존하며 제 나설 때를 어떻게 저리도 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절로 인다.
큰 키를 부러워하며 작은 제 모습을 원망하지도 않고, 주제넘게 키를 키우려 애쓰지도 않으며 때를 기다릴 줄 알고, 주변의 넝쿨 식물의 포악한 장악에도 발악하며 저항하는 것도 아니며 상대를 인정하고 져주며 참을 줄도 알고 혹한의 동토에 발을 담그고도 따스한 봄을 준비하는 모습이란 신기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하기야 어디 복수초 뿐이겠는가? 온갖 식물들이 긴 기다림의 계절을 지내며 제 나설 때를 찾아서 제 몫을 다하며 각기 제 모습을 지키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이치를 깨닫고 있는 모습들이 선각자라고나 할까?
쪼그리고 앉아 노란 복수초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내 모습이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지난 일년동안 얼마나 많이 주변을 미워했고, 시기했으며 못마땅해했는가?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얼마나 많이 부러워했으며 알량한 재주를 얼마나 많이 뽑냈는가?
계획이 뒤틀어졌다고 얼마나 방황했으며 생각대로 안 된다고 얼마나 많이 좌절했는가? 욕심을 앞세워 얼마나 내자신을 다그쳤으며 기대에 차서 얼마나 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는가?
내 안의 오만과 방종에서 시작된 가벼움과 경솔함은 얼마고 게으름과 욕심으로 출발된 조급함과 허탈함, 자기 연민에서 시작된 옹졸한 합리화와 나르시즘, 무딘 생각과 어설픈 손끝에서 나온 치장된 작품들, 버려진 시간들은 얼마인가?
제 분수를 모르고 욕심을 앞세워 분노하고 방황하며 시끄럽게 헤맨 지난날들이 부끄럽기만 하다.
작업실로 돌아가 청소를 해야겠다.
긴 겨울 동안 쌓인 먼지도 털어 내야겠고 아둔한 생각으로 자라난 시기심이나 자만심, 욕심, 게으름, 초초함등도 쓸어내야 겠다.
복수초를 닮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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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박 광 필
■원주출생(1956년생)
■대성고, 청주교육대학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
■원주 「지금, 여기서부터」전 출품및
운영위원
■속초 강원국제관광엑스포
야외조각전 출품및 운영위원
■치악예술관 개관 초대전
■강원 감영 500년 기념 조형물 제작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지용주 선수
기념상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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