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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내 아기
2001년 01월 15일 (월) 원주투데이 webmaster@wonjutoday.co.kr
시인 김 정 란

■1953년 서울 출생

■성심여자중·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졸업

■프랑스 그르노블 III 대학원 졸
업(문학박사·전공: 프랑스 현
대시)

■현재 원주 상지대 인문사회대
부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번역가



엄마. 세상 일이 힘들 때, 나는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화해하게 된 엄마.
그제서야 겨우 받아들일 생각을 하게 된 엄마. 내 엄마.
쭈그렁바가지 내 거푸집. 죽어 흙속에 가만히 누워있는 내 없는 집. 어릴 때, 엄마는 내게 유난스러웠다.
애기 때부터 엄마 손에 잡혀서 별의별데를 다 돌아다녀야 했다.
이를테면 엄마는 요즈음 말로 하면 ‘극성 엄마’였던 셈인데, 난 엄마의 극성이 너무나 힘들고 싫었다.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엄마의 손에 잡혀 어디엔가를 갔는데, 여자 선생님 같은 분이 엄마에게 달래듯 말씀하셨었다.
“사모님, 애기 손을 보세요. 아직 피아노 건반도 다 짚지 못하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난다.
몇 살 때였을까. 아마 엄마는 나를 데리고 피아노 교습소에 갔던 모양이다. 손이 너무 작아서 피아노 옥타브도 다 짚지 못하는 애기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보려고 하셨던 모양이다.

그런 기억은 무수하게 많다. 어떤 극단에도 가보았던 것 같고, 또 글공부도 하러 다녀야 했다.
우리 집 뒷집에 이사온 분이 아동문학가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기어이 그 분을 졸라서 글공부를 하게 하셨다. 지금 그 공부가 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일도 기억난다. 무슨 발표회였는지, 나는 하얀 망사 발레복과 반짝이는 토슈즈를 신고 있다. 친구들 여러 명도 나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나는 이쁜 옷을 입은 것이 너무나 기분이 좋다. 그런데 그 하얀 망사 발레복에다가 엄마랑 선생님이 노란색 깃털을 잔뜩 꽂아주시는 것이다. 나는 혼자 속으로 “이렇게 예쁜 옷에다가 왜 이런 지저분한 것을 꽂아놓는 거지?”라고 투덜거린다. 우리 차례가 되어 무대 커튼 뒤에 서있을 때, 나는 어른들 몰래 그 노란색 깃털들을 몽땅 뽑아버린다.
“이렇게 하니까 훨씬 더 이쁘잖아”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아주 한껏 우아한 포즈로 친구들과 춤을 추고 무대 뒤로 돌아왔다. 그러자 어른들이 나를 바라보면서 웃고 난리가 난 것이다.
“아이고, 털 빠진 병아리네.” 아마 내가 맡았던 것이 노란 병아리 역할이었던 모양이다.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고 나를 노려보고 계셨다. 나는 나대로 오랫동안 잔뜩 볼이 부어 있었다. “이게 훨씬 더 예쁜데….” 그리곤 그 이미지는 내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있었다. 내 마음대로 했다가 놀림감이 되었던 기억. 그리고 화가 잔뜩 나있는 엄마.

엄마는 아주 오랫동안 어린 나를 조물락거렸다. 엄마가 무서워서 어린시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엄마가 무서웠다.
엄마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엄마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어느날부터인가 나는 엄마에게 대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날 좀 가만 내버려둬, 엄마, 난 엄마 인형이 아냐!” 불화는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야 나는 엄마가 왜 나를 가지고 그렇게 극성을 떨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하면서 깊은 자기 완결성에 대한 욕구를 나에게 가르쳐주셨다는 것도. 그렇게 어린 딸을 잡아당김으로써, 사실은 엄마는 당신 자신을 잡아당겼던 것이라는 것도.

엄마는 아주 똑똑한 여자였다.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엄마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냈을 사람이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엄마는 그것이 너무나 억울했을 것이다.

가엾은 엄마. 먼길을 에둘러돌아와 나는 이제야 엄마 생각을 한다. 그토록 오래 혼자 끌탕하며 자기 방식대로 세상과 싸웠던 엄마.
그러나 길을 몰랐던 엄마. 이제 내가 엄마를 잡아당겨서 끌고간다.
나는 엄마를 끌고 우주의 피아노 교습소를 향해 간다. 엄마의 손가락은 옥타브 서너 개를 짚고도 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가. 엄마의 손가락은 우주를 향해 가고 길게 뻗쳐나와있다.

그러고 보면, 나를 엄마를 끌고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엄마들을 끌고 가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보듬고 간다. 죽은 엄마들은 이제 내 아기들이다. 말을 배우는 아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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