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5살이 된 큰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내 나이 35세. 우연히 알게 된 민우회 회원의 권유로 여성민우회에 가입했다.

당시 동화사랑방이라는 소모임에 활동했던 권유자는 '어렵게 아이를 가진 만큼 아이를 귀하게 자라게 하려면 엄마가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을 믿고 민우회 사무실에 처음 발을 들였다.

당시 대표였던 분이 민우회를 '여성의 인권,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고, 그날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나를 되돌아보고,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여성이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 다시 사회에 나오니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가 자세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조직은 남성이 이끌고 여성이 따라가는 모습을 보인다. 하물며 진보적인 사람들이 운영하는 회사도 리더는 대부분 남성이고, 여성의 비율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일하는 환경이나 직원복지는 남성중심으로 짜여진다.

몇 년 전, 한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물론 남성이 리더였고, 직원들은 대부분 여성이었다. 직원 복지를 잘 해주려고 노력했던 리더는 집안일과 아이 돌보는 일을 함께 하는 엄마 직원들을 위한 진짜 복지 환경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고, 무의식적으로 남성 중심의 환경을 만들어갔다. 승진에 있어서도 남성 중심으로 기회가 주어졌다.

위스타트원주마을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다보니 위원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될 기회도 생겼다. 그러나 나도 여성이기에 한 조직의 리더가 남성이 아닌 여성이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많은 고민을 하다가 위원장직을 맡았다. 한편으로 믿어주는 동료와 여성으로서의 오기가 생겨 조직 활동을 시작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두 달에 한번 있는 회의에 위원들의 참석율이 적으면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좀 더 잘 나올 수 있게 했고, 학교 학부모회에서 활동하면서 위스타트 축제가 있을 때 인근 학교 학부모회에서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봉사를 할 수 있게 했다. 좁은 공간에서 맘껏 뛰놀지 못하는 위스타트 아이들에게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 시장님을 만나기도 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우리의 방식으로 하나씩 이뤄 나갔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면서, 과거 나와 같은 사람은 원주여성민우회로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