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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예술'을 즐긴다, 그림책도서관
2015년 02월 09일 (월) 이상희 시인·그림책 작가 wonjutoday@hanmail.net
   

미국 버지니아 주 탄광촌의 헌책방에 들어온 중년 남자가 그림책 서가를 샅샅이 뒤진다. 무슨 책을 그토록 애타게 찾는 걸까….

필시 어린 자녀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찾는 모양이라고 짐작한 주인이 도와줄 양으로 다가가자, 남자는 <눈 오는 날(에즈라 키츠 글, 그림)>이라는 그림책을 찾고 있노라며 띄엄띄엄 뜻밖의 얘기를 털어놓는다.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다 타버렸다고, 다시 장만한 서가에 꽂을 책을 찾는 참인데 그 첫 번째 책이 어릴 때 어머니가 읽어주셨고 거듭거듭 읽었던 그림책 '눈 오는 날'이라고.

얼마 전에 읽은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에 나오는 실화이다. 훌륭한 그림책 한 권은, 그 책을 읽어주던 어른의 목소리와 함께 캄캄한 나락에 떨어진 이의 내면 바닥을 따스하고 환하게 지켜내는 불씨가 된다.

어린 시절의 그리운 유아용품 이상의 매혹적이고도 순정한 그림이야기책으로서, 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부모가 되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시시때때 펼쳐들곤 하는 근사한 일상 예술품인 것이다.

그림책 전문 도서관은 어린이도서관이 아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서부터 100세 노인까지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일상 예술품으로서의 그림책을 최대치로 갖춘 도서관이다. 박경리문학공원의 '패랭이꽃그림책버스'가 실험했던 그림책도서관을 확장하여 더욱 전문성 있게 분류하고 안내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옛이야기 그림책' '시그림책' '창작그림책' '아기그림책과 정보 그림책'으로 통상 분류하는 그림책을 내용과 그림에 따라 다양하게 비치한다. 이를테면 <구름빵>은 '환상 그림책' 서가와 '고양이 그림책' 서가와 '가족이야기 그림책' 서가와 '빵·과자 그림책'서가와 '빛그림 그림책' 서가 및 '백희나 그림책' 등 최소 여섯 군데 서가에서 찾을 수 있다.

동일한 그림책을 여러 권 갖춘다는 것은 이용객의 다양한 필요와 요구에 섬세하게 응답하기 위해서이지만, '훌륭한 그림책 한 권은 다양한 울림-감동을 준다'라는 그림책의 특성 즉 '다성성(多聲性)'을 시각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림책도서관 특유의 서가 사이를 거닐기만 해도, 그림책을 학습도구로 활용하는 세태 탓에 좌절했던 교사와 작가 전문가들에게 새롭고도 다채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또한 일상 예술품을 아이들과 학생들과 공유한다는 것 자체로 마음의 건강을 경험하게 된다.

훌륭한 그림책 한 권은 거대한 미술관이며 스토리텔링 창작물로서의 글, 원화 그림, 아트프린트 등 수많은 컨텐츠를 생산한다. 따라서 그림책도서관은 자연스럽게 그림책 안팎의 온갖 컨텐츠와 자료를 수집 소장하는 그림책 전문 아카이브를 구현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주목하고 있는 '소장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일상예술품-그림책'을 날마다 즐기며 자라는 아이들과 어른이 남다른 미감을 갖추게 될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림책도서관의 아카이브가 충족되면 이를 활용하는 연구와 교육과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일상예술에 의한 지역민의 문화력이 드높아지고, 그 전문 인력이 늘어나고 모이고 성장하고, 지역 곳곳이 그림책 컨셉의 문화요소로 아름다워지는 상상….

그림책도시에서 깨어나고 걷고 일하는 상상은 즐겁다. 그림책도시는 '문화적 자생력과 잠재력을 갖춘 세계 도시-유네스코 창의도시'의 밑그림이며, 지금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는 그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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