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가 거덜 나는데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 홍준표 경남지사의 말이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문제를 놓고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다. 선거에 나설 때는 철썩같이 지킬 것처럼 약속해놓은 후보자들의 공약이 당선 후에는 헌신짝처럼 버림받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지 새삼 의문시된다. 정의 문제는 철학자들 문제로 오인되기 쉽지만 모든 사회가 현실 속에서 절실히 당면하는 과제다. 우리가 몸담고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끌고 가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바로 이 문제를 놓고 들끓고 있다.

잘 알다시피 이에 대해서는 기회평등론과 결과평등론이 대립한다. 기회평등론은 모든 사람이 동일 출발선에 서서, 동등한 게임의 규칙에 따라 경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과 노력 차이로 발생하는 불평등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과평등론은 모두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결과 역시 동등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동체성, 개인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기회평등론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쟁의 원칙이자 다원적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이기도 하다. 많은 학자들이 기회평등론 자체로는 문제가 있어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오쿤(A. M. Okun)은 이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예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공정한 규칙이 지배하는 올림픽 경기라 하더라도 패배한 사람을 사자밥이 되게 한다면 그건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니냐고 묻는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경쟁의 패자는 너무나 가혹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비정규직에, 과중한 노동에, 임의적 해고 대상에, 영원한 을의 위치에 머물러야 하는 등, 그리고 이 모든 걸 흔쾌히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노동에 이르기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가혹한 처지에 놓여 있다.

기회평등론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모두가 동일선상에서 출발한다 해도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늘 패배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누구는 좋은 신발에 좋은 영양에 좋은 훈련에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는 반면, 누구는 맞지도 않는 신발에 아침밥도 거른 채 어느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얼떨결에 출발선에 섰다면, 동일한 출발선에 섰으니 그 결과에도 순순히 승복하라고 말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확대된 기회평등론'이라 불리는 이 입장은 따라서 그러한 사회적 약자 출신 아이들에게는 그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일종의 보상교육 등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상보육, 무상급식은 이 '확대된 기회평등론'의 입장 위에 서 있다. 문제의 초점은 무상이라는 단어에 있는 게 아니고, 무엇을 위한 무상인가에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결과평등론 적용은 현실적으로 상당한 무리가 따르겠지만, 적어도 '확대된 기회평등론'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한국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 생각된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에서 복지국가가 대거 등장한 배경에는 공동체주의적 정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전쟁의 양상이 '총력전'으로 바뀌면서, 전체 국민, 다수 노동자의 노력 여부가 전쟁의 승패를 가름하게 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가 한창 전쟁이 치러지던 2차대전 기간 중에 채택된 것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였다.

전쟁 기간 중 국민 희생에 대한 대가로서 전쟁 후 복지를 약속한 것이다.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구성원 모두 합심하여 노력했으니 최소한의 생활 역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확산을 억지하고자 하는 '반혁명'의 차원 역시 복지국가 확산에 한 몫 했다.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이래 소위 '총력전'이라는 이름 아래 전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성장을 위해 노력했다. 그때약속 역시 경제 전쟁에서 승리해 파이가 커지면 그걸 나누어 먹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그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우리가 피해갈 수 없었다는 당면 조건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오쿤의 주장처럼 패자라 하여 사자밥이 되도록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닌가? 현재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하는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