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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9주년 특별기획: 중국 원주촌, 그 후 10년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학교 세워 우리말·글 교육
2014년 11월 24일 (월) 김민호 기자 mhkim@wonjutoday.co.kr

원주투데이는 지난 2005년 창간 10주년 기획취재 '중국 원주촌을 찾아서'를 통해 일제강점기 일제의 선동과 회유, 협박에 의해 만주로 강제 이주된 원주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안고 낯선 타국 땅에 뼈를 묻어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올해는 중국에 살고 있는 원주사람들의 이야기가 고향에 소개된 지 10년째 되는 해입니다. 원주투데이는 이미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진 그들이 궁금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만난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들이 집단부락을 이루고 살았던 원주촌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그래서 다시 원주촌을 찾았습니다. 중국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 연길시와 안도현 일대, 도문 등지에서 아직 생존해 있는 이민 1세대와 그 후손들을 만나 그들의 지난 10년의 삶과 고향 원주에 대한 생각을 들었습니다.

   
▲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의 독후감 쓰기 백일장은 자치주 내 대부분 중·소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성장했다.

1. 프롤로그-만주로 간 사람들
2. 원주촌, 그리고 청구자
3.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들
4. 민간 교류 20년 '정암촌'
5. 민족혼을 지키는 사람들
6. 좌담회-원주와 중국 원주촌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원주사람들의 만주 이주 과정은 한민족 수난사와 맞물려 있다. 식민지배 하에 강제 이민과 독립운동 등이 이주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원주사람들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으로 우리말과 글을 2세대들에게 가르쳤다.

민족공동체를 일구며 생존의 한 가운데서 민족학교도 세웠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원주촌 2세들과 재중 동포들에게 우리말과 글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으며, 어떻게 교육되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1천200개 조선족학교 30년만에 300개

생존해 있는 원주출신 이민자들에 따르면 원주촌 주민들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부락 내에 소학교를 세우고 자녀들에게 우리 말과 글을 가르쳤다. 지금은 작고한 이도구 씨와 김양수 씨 등이 교사로 일하면서 그곳에서 태어난 2세들에게 조선말과 역사를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일깨운 이들이다.

1980년대까지 1천200여개에 달하던 중국 내 조선족 소학교와 중학교는 30여년만인 현재 300여개로 줄어든 상황이다. 특히 부모들이 한국으로 들어가거나 자녀들을 대도시로 보내면서 1개 향(우리의 면단위)에 5~6곳에 이르던 조선족 소학교가 지금은 향 내에 단 한 곳도 없는 곳도 많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72) 회장은 "조선족학교가 줄어든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문화, 즉 말과 글을 전수할 곳이 그만큼 사라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민족인재 양성의 터전 조선문독서사협회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는 한국어 교육 및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연길시 중심 공원로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독서사(도서관)를 운영하면서 조선족학교 교사 재교육을 실시하는 등 재중동포 2세 양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 정판룡 전 연변대 부총장을 비롯해 독서운동가인 김재권 회장, 정옥동 연변복지병원 이사장, 안병렬 연변과기대 교수, 함갑주 전 명지여교 교장 등 국내외 인사들이 중국 조선족 청소년들에게 독서운동을 권장하고 민족인재 양성의 터전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지난 2000년 5천여권의 도서를 가지고 순수민간 비기업 문화단체인 연변조선문족서사를 설립한 것이 그 시작이다.

14년간 이어져 온 배경에는 박문일 전 연변대 총장과 오장숙 전 주인대 상무위원회 주임, 한석윤 연변청소년진흥회 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조선족 지성인들의 후원과 학부모들의 성원이 있었다. 연변에 위치한 3개 출판사와 작가들, 그리고 한국의 민간단체들도 도서를 지원하며 힘을 보탰다.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를 이끌고 있는 조권옥(62) 사장은 "책이 있는 분은 책을, 집이 있는 분은 집을 내놓았다"며 "아무것도 낼수 없는 분들도 마음과 정성을 다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는 박문일 전 연변대 총장을 비롯한 7명의 운영위원과 5명의 전직직원, 10여명의 겸직독서지도교원들의 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원소학교 옆에 있는 제1 독서사와 연길병원 인근에 위치란 제2 독서사에 장서 3만여권을 갖추고 있으며, 연간 고정 이용자만 1천여명에 달한다. 이 밖에도 매년 4기에 걸쳐 독서지도반을 운영하고 4~5회의 독서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도서관 규모에 불과한 열악한 환경이지만 항상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독서사를 찾는 독자층도 날로 넓어지고 방대해지고 있다는 게 이 곳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제2 독서사 백경단(36) 실장은 "4세부터 70대 노인까지 연길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일반 시민들도 독서사를 이용한다"며 "주말이나 휴일, 방학기간에는 독서사에 찾아온 독자(이용자)들의 신발이 복도까지 주렁주렁 놓여있는 모습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편지 한 통으로 시작된 원주와의 인연

연변조선문독사사협회와 원주와의 인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경리문학공원 고창영 소장이 연변 조선족 문인 김혁 작가로부터 "연변에서도 토지를 읽고 싶다"는 한 통의 편지를 받고 '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면서 시작됐다.

2010년 소설 토지 36질을 전달한 것을 시작으로 2013년까지 4회에 걸쳐 도서 1만2천여권이 연변조선문독사협회와 청소년문화진흥회 등에 전달됐다. 박경리문학공원과 토지사랑회 등을 중심으로 연변 어린이들이 우리말과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시작한 일이다.

토지시낭송회, BPW전문직여성클럽, 원주시청문학회, 원주여성문학인회, 패랭이꽃그림책버스,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그린리더, 새마을문고 원주지회, 대한어머니회, 원주주거복지센터 등 지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뜻을 모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모은 책을 연변까지 전달할 운임 경비가 부족하자 토지사랑회 회원들은 경비 마련을 위해 직접 앞치마를 둘러메고 바자회를 개최했고, 수 많은 시민들이 망설임없이 자신의 지갑을 여는 감동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비록 지금은 중단됐지만 연변 어린이에게 책 보내기 운동은 연변에 한국 문화와 문학세계를 알리고, 양 지역 우호증진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 조권옥 사장은 당시 "크나 큰 힘을 실어 준 원주시민들의 따뜻한 성원을 우리 독서사 가족들과 지역사회 지성인들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14년의 노력…중국 정부도 지지

연변조선문독서사협회가 연변을 대표하는 한글 도서관이자 독서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운영진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을 진열하고 이용자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각 학교와 학부모들을 찾아다니며 청소년 독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일깨웠다. 독서를 많이 하는 학생과 독서교육에 힘 쓴 교사들을 학교와 연계해 표창하는 등 열의를 불러일으켰다.

독서운동을 이끌어 갈 지도교원 양성에도 앞장섰다. 별도의 독서지도교원 양성반을 운영해 관심있는 교직원, 대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50여 시간의 수료과정을 거친 뒤 시험을 통과하면 독서지도교사 자격증을 발급했다.

독서지도교원 양성반은 10년간 18기에 걸쳐 450여명의 지도교원을 배출했는데, 그 중 일부는 독서사에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독서지도를 하고 있으며, 그 외 대부분은 각급 학교와 단체에서 독서운동을 이끌고 있다.

단계별로 운영중인 독서지도학습반은 조선문독서사의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지도교사 1명에 학생 10명으로 이루어지는데 한 반 구성원이 같은 책을 읽고 소그룹 활동으로 독서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57기를 운영해 6천700여명이 수료했다.

최근 수년 간 연변에서 열린 각종 백일장에서 200여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100여 편의 작품을 주급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발표하는 성과를 거뒀다.

조선문독서사협회가 개최하는 독후감발표회, 백일장, 독서왕 및 독서모범가정 표창 등 각종 독서행사는 최근 한족 어린이들까지 참가할 정도로 연변 독서문화를 대표하는 행사로 성장했다. 20여회를 개최하는 동안 참가인원이 1만5천여명을 훌쩍 넘어섰다. 특히 대표 행사인 독후감쓰기 백일장에는 자치주 내 대부분 중·소학교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함께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진행되고 있다.

조선문독서사가 걸어 온 지난 14년의 활동은 조선족 사회는 물론, 중국 정부와 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독서교육을 후대양성의 밑거름으로, 문화창달의 창구로, 21세기 민족인재를 육성하는 사업으로 여기고 뜻을 보탠 이들의 노력이 서서히 꽃망울을 맺고 있는 것이다.

조권옥 사장은 "독서사가 14년간 견지해 올수 있는 것도 당의 민족정책이 좋았고, 우리 민족의 후대와 민족문화 발전에 관심있는 지성인들이 마음과 힘을 모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도 독서운동을 통해 우리 조선족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사랑을 가르쳐주는 일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석윤 청소년문화진흥회장
"독서운동에서 답 찾았다"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한석윤(72) 회장은 현재 조선족 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에 들어온 지 150여년밖에 되지 않지만 교육열에 있어서는 중국 내 소수민족 중 최고였고, 한족보다 앞서 있었다고 자부했었다"는 그는 "개혁과 개방으로 인한 중국의 변화와 조선족 사회에 불어 온 한국바람이 재앙이 됐다"고 분석했다. 한국에 나가있는 사람이 늘고, 다녀 온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씀씀이가 커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으로 있다가 퇴직 후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사업에 황혼을 불태우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 조선족학교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했다. "민족학교가 축소된다는 것은 우리 문화를 전수할 곳이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한 한 회장은 "실제로 연길 인근은 물론 흑룡성과 요녕성 등 산간지역 마을단위 부락들이 사라지면서 우리민족의 공동체 공간도 함께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조선족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했다. 소수민족을 포용하는 중국의 민족정책은 전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우수하다고 평가한 그는 "연변자치주 내에 살고있는 조선족들이 지금까지 민족성을 잃지않고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한 회장은 한국이나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라도 중국의 민족정책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회장은 "우리 민족문화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데, 그 답을 독서운동에서 찾고 있다"고 했다. "학교교육을 떠나 책 속에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책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민족문화를 전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려움도 토로했다. 중국 내에 한문으로 출판되는 도서는 매년 1만여종이 넘지만 조선글로 출판되는 책은 겨우 50여종에 불과하고 수량도 미미한 숫자라고 밝힌 그는 "책은 우리 민족문화를 전수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면서 "한국의 민간단체들이 보내주는 책이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했다.

한석윤 회장은? 언론인, 동시인, 사회활동가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연변기자협회 부주석,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부회장,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단법인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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